[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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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 전이음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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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요한, 씨돌, 용현' 표지 이미지 / 사진 = 가나출판사
책 '요한, 씨돌, 용현' 표지 이미지 / 사진 = 가나출판사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전이음 칼럼니스트] 해발 팔백 미터에 위치한 산골 마을, 봉화치. 산속에 숨어있어 찾기 힘든 까닭에 한국전쟁의 화마도 비껴갔던 곳이다. 이곳에 범상치 않은 외지인이 나타난 것은 30년 전이었다. 덥수룩한 머리칼과 수염에 너덜너덜한 옷차림은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자연인’이라는 말조차 없었던 그 시절에 누구보다 자연인 같았던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일을 하다가 흘러든 사람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씨돌’이라는 것밖에 몰랐다.

특이한 이름은 남자의 정체에 대한 수수께끼를 더할 뿐이었다. 그런데 의구심을 품고 그를 경계했던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남자를 이웃으로, 정선 사람으로, 나아가 ‘참 좋은 아저씨’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책은 SBS스페셜의 제작팀이 세 가지 이름으로 살았던 남자의 흔적을 뒤따라가 그 답을 찾는 과정을 따라간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4부작 다큐멘터리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의 내용을 정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연인 씨돌은 한때 요한이었으며, 용현이었다. 용현이 요한으로, 요한이 씨돌이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정선의 작은 마을로 흘러들기 전, 남자는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다. 87년, 최초의 직선제 선거가 있던 그해에 야당을 찍었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 폭행당해 목숨을 잃은 고 정연관 상병의 의문사 사건이 있었다. 사건을 은폐하고 유가족을 감시했던 권력에 맞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사람은 고인과 일면식도 없던 요한이었다.

요한은 민주화운동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이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도록 발로 뛰었다.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유가족들의 모임 ‘한울삶’의 부모들은 요한을 생생히 기억한다. 자신이 일이 아닌데도 늘 발 벗고 나섰고, 시위를 진압하는 폭력 앞에서도 몸 사리지 않았던 사람으로.

요한일 때도, 씨돌일 때도 그는 자신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았다. 씨돌은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제초제를 거부하고, 겨울철 고라니가 사냥꾼에게 잡히지 않도록 빗자루로 눈밭에 찍힌 발자국을 지우는 사람이었다. 몸이 불편해졌을 때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곤 남겨두지 않았던 사람. 도울 일이 있다면 그 어느 곳이든 갔던 그의 삶은 어디에서도 쉽게 느끼기 힘든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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