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 동물원의 시간은 늘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하다. 손오공도 암사자도 자신의 땅을 개발해서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꿈 따위는 갖고 있지 않을 테니.” (p.37)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전이음 칼럼니스트] 동물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린 시절 소풍과 현장 학습의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땅과 바다, 들판과 밀림을 누빈 조상들을 둔 다양한 동물들이 공존하는 공간. 어딘가 나른하며 평화로운 곳. 하지만 2년 동안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세계 14곳의 동물원을 다닌 저자에게 동물원은 일상과 단절된 특별한 장소 그 이상이다.
동물원은 인간 역사와 함께 호흡해온 격동적인 공간이다. 파리 동물원은 계몽운동의 근거지이자 프랑스 혁명 이후 운영을 둘러싼 각축전을 통해 ‘시민사회의 요람’ 역할을 했고, 세계 최초로 대중에게 개방된 런던동물원은 과학에 대한 투자와 계급의 역사를 오늘날에도 이어가고 있다.
빠르거나 점차적인 발전상만이 동물원이 간직해온 인간의 흔적은 아니다. 전쟁의 참혹함은 동물원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베를린동물원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포화로 3,715종 가운데 단 91마리의 동물만이 살아남았고, 태평양전쟁 발발 후 일본의 각 동물원에는 혹시나 모를 탈출을 우려해 맹수를 사살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를 최전선에서 수행하고 있는 곳이 바로 동물원이다. 그러니 동물원을 둘러싼 논란이 끊일 리 없다. 베를린동물원의 마스코트, 모두의 사랑을 받던 북극곰 크누트의 죽음은 동물의 행복과 복지에 의문을 던지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한편 덴마크 코펜하겐 동물원에서 기린 마리우스를 공개 사살한 일은 더욱 극렬한 반응을 불러왔다. 유전자 조합을 문제 삼아 건강한 개체를 도살한 이 사건은 동물 보호론자들의 분노와 함께 생명권과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결국 동물원은 아찔한 개발의 속도에서 한발 비켜나 있지만, 인간의 탐욕과 경제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다. 이 책은 동물원을 들여다보며 결국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그리고 실패 속에서도 공존을 위한 시도가 어떻게 이어져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