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불만의 품격’ - Pro불편er는 아무나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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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불만의 품격’ - Pro불편er는 아무나 되나?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3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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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불만의 품격' 표지 이미지 / 사진 = 웨일북
책 '불만의 품격' 표지 이미지 / 사진 = 웨일북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 칼럼니스트] 불만에도 품격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책 제목이 이목을 끌었다. 사실 사전적 의미로 ‘품격’은 중립적인 단어다.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혹은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라고 정의되어 있다. 한 마디로, 사람의 본 바탕 혹은 됨됨이를 말한다. 그런데 본 바탕이란 사람에 따라 영 덜떨어질 수도 있고, 매우 고상할 수도 있을 터.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좋은 의미, 고상한 의미로 쓰인다. ‘품격이 있다’라고 하면 사람 됨됨이가 썩 괜찮다는 말이다. 반대로 ‘품격이 떨어진다’고 하면 경박스럽거나 싸구려 느낌이 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품격’이란 좋은 성품이나 바탕으로 규정한 후, 그게 있다 혹은 떨어진다는 말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이 책의 저자도 ‘불만’에 ‘품격’ 즉 시쳇말로 고퀄리티 불만이 무엇인지, 고퀄리티 불만을 제기하려면 어떤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책 내용을 다 긍정하는 것도 아니며, 글을 대단히 잘 쓴다고도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한 번 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란 생각이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요즘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불만 트렌드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 위주로 판단하지 않고 타인을 위하여 경청하는 자세, 자신의 불만을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하지 않는 태도, 예의 없는 자들에게 웃음과 재치로 맞서는 기술, 자신을 지키면서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실천,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품격이 있는 불만이다. 품격 있는 불만을 드러낸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매우 상식적으로 불쾌한 상황, 환경을 대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결코 쉽지 않다. 좋은 사람, 나를 편하게 해 주는 사람,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사람에게 이런 태도를 가지기는 쉽다. 하지만 나를 혹은 상식적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화나게 하는 사람 혹은 상황 앞에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한다? 내게 퍼부어지는 폭언을 점잖게 대응한다? 예의라고는 발가락 때만큼도 없는 자들에게 위트를 날린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것 같은 세상이 변화하도록 앞장선다? 그건 더더욱 요원하다. 희망이 보여야 앞장 설 힘도 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의미로 ‘품격이 있는 불만’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은 볼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그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저자는 직업으로 삼았다니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프로불편러’, 이것이 저자의 직업인 듯하다. 불편에 영어의 사람을 나타내는 어미 ‘er'을 붙여 ’불편러‘가 탄생했을 것이고, 거기에 ’프로페셔널‘의 ’프로‘가 붙어 불편함을 드러내는 수준이 프로페셔널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 프로불편러일 것이다. 어디서 한 번 스치듯 들어본 단어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불편함을 프로페셔널하게 다루며 살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참 대단하다 싶었다. 어릴 적 장래희망이 욕쟁이 할머니였다는 것도 매우 독특했다.

개인적으로 저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잘못된 것, 불편한 것, 문제가 있는 것을 그냥 대충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상당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자신의 가정사를 적절히 드러내며 현재의 자신이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어 그런 측면에서 건강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한때는 그로 인해 위축되고 힘들었을 텐데 이제는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인 것 같기도 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하지만 아마, 저자는 지금도 자라는 중일 것이다. 그런 뉘앙스가 약간은 거친 어조의 글 속에서 자주 드러나고 있었기에 그럴 것이라 추측해 본다. 죽을 때까지 자라야 하는 게 인간이다. 문제는 그런 인간을 보기는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자라고 있는, 자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저자의 의지가 글 속에 보여서 좋았다.

아마, 점잖은 사람, 예의바른 사람이라면 이 책의 목차만 보고 책을 덮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진짜 점잖음이 뭔지, 예의가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목차만 보고도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예수를 욕 한 마디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알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진짜 욕쟁이였다. 그는 대 놓고 당시 위선자들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었다. 그게 그들을 향한 점잖음이요 예의였기 때문이다.

글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글과 그 사람의 됨됨이는 상당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삶이 진정한 ‘프로불편러’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럼에도 주류가 아닌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녀가 밖으로만 프로불편러가 아닌 자기 내면으로도 프로불편러라면, 진정 프로불편러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욕쟁이 할머니가 불편한 이유는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티만 보려는 할머니일 때이다. 저자가 원하는 욕쟁이 할머니는 이런 할머니가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도 자신과의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프로불편러, 부조리로 보이는 것을 다각도로 보고 또 볼 수 있는 그런 프로불편러가 되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자신을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가진 불만, 열등감, 자기모멸감을 기득권자들을 향해 투사하면서 그것을 정의나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욕쟁이들은 세상에 해악을 끼친다. 반대로 보수라고 하는 사람 중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변화하려는 의지 자체를 죄악시하며 그것을 추구하려는 자를 비난한다. 역시 이런 욕쟁이도 세상에 해악을 끼친다.

나는 어떤 쪽인가? 매사에, 매번 촉수를 깨워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욕쟁이가 될 자격이 있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너무도 쉽게 자기기만의 잠에 빠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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