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클래식, 스크린에 흐르다’ - 멋진 푸가로 연주되는 세상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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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클래식, 스크린에 흐르다’ - 멋진 푸가로 연주되는 세상을 바라며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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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클래식, 스크린에 흐르다’ 표지 이미지 / 사진 = 청아출판사
책 ‘클래식, 스크린에 흐르다’ 표지 이미지 / 사진 = 청아출판사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취향은 다르겠지만 영화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중음악을 선호하는 사람에 비해 적을 것이다. 이 책은 대체로 좀 오래된 영화, 지나치게 오락성이 강하지 않고 작품성이 강한 영화와 그 영화들 속에 삽입되어 작품의 가치를 알게 모르게 높인 클래식 음악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음악이 없다고 상상해 보자.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사람의 음성이라곤 한 마디도 없는 채플린의 영화조차 음악으로 가득하다. 그만큼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는 음악의 힘이 크다는 말이다. 저자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사람인지라 영화의 격을 높이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이 주요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있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금 오래된 영화 중에 볼 만한 좋은 영화를 소개받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내용은 거의 없는 그런 영화 말고 영화를 보며 무언가 음미를 해 보고 싶은 경우라면 말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누가 영화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글쎄, 그렇다고 해야 할지 그저 그렇다고 해야 할지 답하기는 좀 애매하다. 왜냐하면 편식이 좀 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영화는 딱 질색이다. 밝고 활기차면서도 내용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코믹할 거라면 진짜 확실하게 코믹해야 본다. 어둡고 슬프고 경악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면,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보다는 유추나 상상을 하게 만드는 영화라야 본다. 
 
내게 있어 영화란, 이미 피곤한 인간의 삶을 다시 봐야 하는 매체가 아닌, 보는 순간만큼은 그런 인간의 삶을 잠시 잊을 수 있게 해 주는 오락이다. 편안하게 내용을 음미하며 볼 수 있거나 박장대소를 하며 웃을 수 있어야 좋다. 아니면 여운이 한 달 쯤 갈 정도이거나 수십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이라야 한다.
 
인생을 반백 년 넘게 살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범주의 영화는 거의 다 본 건지 최근엔 볼 영화가 없어 툴툴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거였다. 혹시 더 볼거리가 소개되어 있을까 하여 읽기로 했다. 24편의 영화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 중 볼 욕구가 생기는 몇 편을 발견했다. 그 중에는 아주 오래 전에 한 번 봤던 것도 있다. 책을 보다 말고, 하나씩 다운로드를 받아 두었다. 틈이 있을 때마다 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간단하긴 해도 제법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즉, 스포일러 주의라고 미리 말해두고 싶다. 영화 줄거리를 알고 보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은 이 책이 마음에 안 들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면 영화를 보며 그 영화 속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영화의 내용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영화를 보게 될 때 좀 더 잘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저자가 생각하는 영화와 음악과의 관계에 반론을 제기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게 될 수도 있어 그것 또한 영화를 한층 더 몰입하여 보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소개된 영화 중에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마지막 사중주>다. 영화의 내용도 꽤 괜찮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듣게 되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그 자체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영화를 다 본 후에 몇 번이고 그 길고 깊은, 기존의 형식을 뛰어넘어 초월하고자 하는, 진정한 진보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매우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베토멘의 육성을 들어야했다.
 
무려 7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악장 구성에서부터 파격적이다. 기존의 4악장 구조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연주자는 1악장부터 7악장까지 한 번도 쉴 수가 없다. 현악기 특성상 조율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거기다 1,2악장에 푸가 형식을 접목했다. 또 하나의 형식 파괴다.
 
푸가는 여러 개의 선율이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합을 이루어야만 한다. 삶이란 각자의 선율이 분명해야 하면서도, 독주하여 살아갈 수 없고 또 다른 선율과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로 인 것처럼, 푸가라는 음악 형식도 그렇다. 주 선율에 반주가 뒷받침되는 갑과 을로 이루어진 비상식적인 세상을 향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 질책이라도 하는 것 같은 음악형식이다. 그만큼 어떤 음악형식보다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푸가 형식인데, 베토벤은 이 음악의 서두에 푸가를 넣었다. 
 
우리 사회도 푸가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구호일 뿐이며, 자유를 빼앗는 도구, 평등을 남발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교육이 개인의 독립적 가치에 우선하지 않는데 어떻게 한 인간이 자신의 자존감을 형성해 나갈 수 있겠는가! 자신의 독특함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인간들이 모여 어떻게 제대로 된 조화를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진정한 진보는 개인을 개인되게 하면서 그 안에 조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보수 역시 조화로운 개인이 만들어낸 사회를 제대로 지켜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 사회에는 없다. 서로 반목하는 것만 있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만 혈안이 된 모양새만 자꾸 눈에 띈다.
 
저자가 영화 속 클래식음악을 단편적으로 소개하지 않고, 음악사적으로 꽤 전문적으로 소개하고 있어,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 같다. 좋은 영화를 소개받고 싶은 독자도 가볍게 읽으며 볼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희대의 전염병이 온 세상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시기에 여기 소개된 영화 한 편이 독자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인생템을 얻게 되는 독자가 많아지면 좋겠다. 삶은 의외로 작은 기회를 포착하는 데서 새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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