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초예측’ - 반성을 촉구하는 비관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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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초예측’ - 반성을 촉구하는 비관적 메시지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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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초예측’ 표지 이미지 /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책 ‘초예측’ 표지 이미지 /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인간이란 무엇인가’ 혹은 ‘인간 정신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명징한 답은 이 세상에 없다. 그 만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하긴, 나는 내 뒷모습, 뒤통수, 걸을 때의 엉덩이 모습도 모른다. 물리적인 나 자신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 정신이라는 게 육체와 일체인 건지 분리된 무엇인데 육체와 수시로 소통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른다. 최근, 뇌과학은 정신이 뇌에 있는 것 같은 연구결과도 차곡차곡 뱉어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정신이 뇌와 관계가 없지는 않으나 반드시 그것만은 아니라는 애매한 소리도 한다.

그런데 제 자신을 제대로 모르는 인간의 호기심 혹은 오만함은 인공지능이라는 것에 도전했고, 이제 육체적 노동력은 물론 지적, 정서적, 정신적 노동력까지 잠식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예전에 아이들이 공부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내 머릿속 지식을 USB에 담아 니 머리에 꽂을 수는 없지 않겠니?” 이젠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말이다. 섬뜩하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인가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무용한 존재로 전락한 인간은 애완동물이 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그 동안 간헐적으로 미래에 대해 이런 저런 상상을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하는 석학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대체로 희망적이기 보다 암울했다. 더 큰 문제는 개개인이 혹은 거대 기업, 국가가 자신들이 그 암울함을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브레이크나 기어가 고장 난 차를 몰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인간의 삶이 혹은 인간 사회가 허구에 대한 믿음으로 유지된다는 유발하라리. 적극적으로 그의 말에 공감한다. 한때 종교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고 거기서 빠져나오며 인간이 가진 종교에 대한 집착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국가도 돈도, 사상도, 종교도 결국 허구다. 그런데 그 허구에 대한 믿음이 있어 인간을 살아갈 수 있고,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그 허구가 우리를 위해 기능한다면 괜찮은데 그 허구에 우리가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 맹신으로 인해 폐가망신 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만약, 거의 모든 인류가 그 허구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코로나19는 언텍트 시대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조만간 유비쿼터스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가상과 현실의 구분은 거의 없어지게 된다. 그 속에서 인간은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기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때 인간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 어디에 존재할 때 참 인간인 것일까? 어쩌면 이런 질문조차 멍청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민’이 ‘주’여야만 한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다보니 ‘민’이 자기가 사는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기가 어려워진다. 현재 무엇이 일어나는지, 현재 일어난 일이 앞으로 무슨 작용을 일으킬지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혼란만 가득해진다. 그러면 ‘민’도 ‘정치가’도 무지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각자의 탐욕만 존재하게 된다.

그뿐인가!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기존 사회질서, 경제구조를 완전히 파괴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인간을 무용계급으로 만들 수도 있다. 결국, 끊임없이 변화에 민감하게 쫓아가는 사람만이 살아남게 된다. 거기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도 종말을 고할지도 모른다. 인위적으로 몸과 뇌 의식을 설계하고 만드는 방법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원고갈은 매우 심각하다. 가끔 쓰레기를 치우며 반성을 하곤 한다. 버릴 걸 왜 구입했을까, 굳이 없어도 될 것을 뭐 하러 샀을까. 그만큼 우리는 소비하는 데 익숙하고, 있는 것을 끝까지 잘 활용하여 불필요한 낭비를 하지 않으려 하는 데 미숙하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세금으로 나라를 경영해야 하는데 세금이라는 게 결국 눈 먼 돈이다 보니 너무 쉽게 낭비를 해 버린다. 포퓰리즘 충족시키는 데 낭비하고 그것으로 민심을 사려고만 한다. 오죽하면 진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세금 내기를 기피할까.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기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국가가 세금을 제대로 경영한다면 얼마든지 내겠지만 그렇지 않다. 돈을 벌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 국가가 얼마나 세금을 낭비하는지 볼 때 얼마나 기가 차겠는가! 이렇게 개인도 국가도 낭비가 일상이 된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말한다. 나이 많은 사람이 가진 노동력의 가치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사회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이제 잘만 관리하면 60, 70대도 과거 4~50대 못지않다. 더구나 그들이 가진 숙련된 노하우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린다 그랜튼도 말한다. 지금까지 삶에는 교육, 일, 은퇴라는 3단계만 존재했다. 그리고 누구나 이 3단계를 거쳤기에 개인은 단계별로 변화를 의식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런 단계가 무의미해진다. 매 순간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하고 자신을 변화시켜가야만 한다. 여가시간을 오락이 아닌 재창조에 투자하는 사람이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란 책이 있다. 그 책을 읽었을 때는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노동의 종말이라니 참 발상도 뛰어나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불과 몇 십 년도 안 되어 그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살아서 이런 세상을 맞이할까 했는데 내일 죽지 않는 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노동이 사라지는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현재 상황만으로 예측을 한다면, 유토피아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들이 정신이 들어 적어도 디스토피아가 되는 것만은 막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시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며 숨고르기를 하고 정신을 차려 자신의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기를 바란다. 희망적 메시지는 인간을 들뜨게만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비관적 메시지는 반성을 유발하고 반성하는 인간은 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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