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나는 오늘부터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 - ‘진짜’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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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나는 오늘부터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 - ‘진짜’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면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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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오늘부터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 표지 이미지 / 사진 = 가디언
책 ‘나는 오늘부터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 표지 이미지 / 사진 = 가디언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피아노를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제대로 배울 수 있고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이상한 내용의 책을 만났다. 피아노를 제법 오래 쳐 본 사람으로서 저자의 주장은 이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 매우 강한 의지로 이 책에서 가르치는 것을 자기화할 수 있다면, 저자의 주장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판단을 책을 읽은 후 할 수 있었다.

저자는 글을 제대로 쓰고 있다. 자신이 정확히 아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조금 전문적인 내용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피아노를 제대로 연주해 보겠다는 의지로 의미를 파악하며 정독한다면, 독자가 내용을 파악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말로 피아노를 제대로 연주해 보고 싶은 열망과 의지가 강렬할 사람이라면 꼭 읽고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따라해 보기 바란다. 다 굳은 줄 알았던 손가락에서 멋진 멜로디가 만들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참 독특한 악기다. 건반을 통해 해머를 건드려 현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데 타악기로 분류되지 않는다. 각각의 건반을 가지고 소리를 만들기 때문에, 모든 소리는 하나하나 단절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피아노는 88개의 단절된 건반으로 각각 다른 길이의 단절된 현을 두드려 소리를 낸다. 즉, 타악기의 특성을 가진, 결코 본질적으로 레가토를 만들어낼 수 없는 악기가 피아노란 말이다. 이런 악기의 특성 때문에 피아노 연주를 잘 한다는 것은 레가토를 잘 만들어낸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좋은 연주를 통해 피아노에서 만들어낸 레가토를 들었을 때 듣는 이는 단절을 느끼지 못한다. 숙명적으로 단절된 음들을 연결시켜 내는 피아니스트의 재능은 그래서 매우 놀라운 것인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피아니스트가 이미 자기 내면에 있는 소리를 피아노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피아니스트야말로, 본인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바람직한 사회가 어떻게 해야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나와 너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사람이고, 내가 낼 수 있는 소리와 네가 낼 수 있는 소리 역시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그게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다. 그런데 그 안에 질서와 조화가 생기면 사회가 형성되게 된다. 물론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선택을 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보다 나은 나 혹은 너로 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자의 사회가 바로 피아니스트가 구현해 낸 피아노 음악과 같은 사회이다.

전혀 조화가 될 수 없는 숙명적 개인들이 보다 나은 개인이 되기 위해 그 숙명을 극복하려면 먼저, 보다 나은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모든 개인이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교육자가 되고 정치가가 되고 사업가가 된다면, 그 사회는 기가 막힌 레가토가 만들어지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레가토를 잠시 구현했던 놀라운 천재들이 있긴 했으나 대체로 인류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다만, 그 몇 안 되는, 조화를 꿈꾸고 실현하려 노력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레가토 때문에 인류가 공멸하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해 볼 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레가토가 있는 밑그림을 상상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려는 노력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을 해보게 된다.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진실한 연결이란 거의 찾기 힘든 세상사를 보는 데 진저리가 나다 보니, 피아노의 레가토의 중요성을 말하려던 것이 인류사로까지 비약된 것 같다. 아무튼, 그 만큼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면, 자신이 레가토를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페달을 전혀 밟지 않고도, 스타카토를 통해서도 레가토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레가토는 피아노 음악이 소음이 아닌 음악이 되게 하는 데 절대적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물론, 그 외에도 익혀야 할 것이 아주 많다. 이 책은 아마추어가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과 그 요령을 예시까지 들어가며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전혀 사소한 것이 아닌 의자 높이의 중요성부터, 악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마음속에 음악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 무엇이든 그렇지만 피아노란 악기를 배우려면 겸손한 자세가 필수라는 것, 아무리 오래된 어쿠스틱 피아노라도 디지털 피아노가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낼 수 있으니 연주를 제대로 하려면 악보 익힌 후에는 꼭 어쿠스틱 피아노로 연습을 하라는 것, 제대로 자기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빨리 악보를 외우라는 것 등 아주 기본적인 것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손가락 개발하는 법, 작은 손의 한계를 극복하는 법, 악보를 잘 보는 법, 빠른 템포를 내는 법, 메트로놈 없이도 템포를 유지하는 법, 음악 기호를 해석하는 법, 페달을 잘 밟는 법 등 피아노를 치면서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난관들을 극복하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고민에 따라 골라서 먼저 읽고 연습할 때 활용할 수 있다. 실용서이니 만큼,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한 번 쯤은 전체를 훑어보면 좋겠다. 저자에 대한 신뢰가 생겨야 이 책으로 공부할 마음이 생길 테니 말이다.

덩치가 커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악기가 못 된다는 측면에서 피아노는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악기보다도 작품 선택의 폭이 넓은 악기이다. 그만큼 작곡가들이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진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악기로 오케스트라를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멋진 악기를 단 몇 곡이라도 소화하여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가지고 열공하기 바란다. 머리와 피아노와 손가락, 셋이서 하나가 되어 책이 가르치는 내용을 소화해 낸다면 꽤 괜찮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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