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왕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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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왕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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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왕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
[전문가 서평]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왕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아직도 김일성이 세운 나라(?)는 ‘조선’이란 국호를 버리지 않고 있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이란 말을 쓰니 말이다. 결코 인민을 위한 공화국이 아님에도 ‘인민’을 쓰고 있으니 자신들이 ‘조선’의 적통이라도 되는 듯 ‘조선’을 국호에 넣고 있는 것 역시 우습다. 아무튼, 북한에 의해 조선 600년의 그림자는 나라가 망한 지가 100년이 넘도록 남아 있는 셈이다.

반만 년 한반도의 역사 가운데 사실 조선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별 매력이 없다. 다만, 역사 이래 누구와 견주어 도무지 뒤지지 않는 세종대왕,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다 기울어가는 조선을 다시 한 번 도약시킬 수도 있었을지 모를 만큼 명민하고 깊은 성정을 가졌던 정조, 그리고 어떤 임금도 따를 수 없는 구국충정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지켜낸 이순신 장군은 어릴 적부터 우러러 보고 자랑스러워했던 인물들이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조선이나, 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진짜 ‘실록’이 있다는 것은 못내 자랑스럽긴 했다. 그래서 읽어보기로 했다. 설민석 씨가 워낙 유명한 한국사 강사이기도 하여 재미는 따 놓은 당상일 듯하였다. 예상대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조선왕조실록은 하루에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 걸릴 만큼 방대한 책이다. 조금 더 실감나게 이 책의 규모를 말하자면, 책 한 권 두께가 1.7cm인데 그게 2,077권이나 되어 위로 쌓으면 12층 아파트 높이가 된다고 한다!

책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표지 이미지 / 사진 = 세계사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양적인 면에서만 어마어마한 게 아니다. 그 내용은 더욱 더 믿기 어려울 만큼 정직하다. 정치적인 내용만 담긴 게 아니라 민초들의 다양한 삶까지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는 더욱 어마어마하다. 왕이 살아있는 동안의 기록이나 결코 그 기록을 왕이 볼 수 없다. 당대의 왕만 볼 수 없는 게 아니고, 그 후손의 왕도 볼 수가 없다. 그렇게 철저히 왕권의 입김을 차단할 수 있었기에 어떤 나라에도 없는 정직한 역사 기록이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 27명 임금 중 ‘종’이나 ‘조’로 명명되지 못하고 ‘군’으로 명명되는 왕이 세 명 있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실록’이라 하지 않고 ‘일기’라 한다. 세조에게 쫓겨난 단종을 ‘노산군’이라고 해서 ‘노산군일기’가 있었고, 광해군, 연산군도 일기가 있다. 훗날, 노산군을 다시 단종으로 추존하게 되어 ‘노산군일기’는 ‘단종실록’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는 두 가지 실록이 있다고 한다. 그 부끄러운 임금도 아버지라고, 아니면 광해군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는지 인조는 아버지 선조에 대한 실록을 다시 쓰게 한다. 다행인 것은 먼저 썼던 실록을 폐기하지 않고 두 가지 실록을 모두 보존했다는 것이다. 그 점은 21세기 정치인들도 배워야 할 듯하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갔던 정도전. 21세기에도 쉽지 않은 신권 중심 세상을 디자인하려 했던 그에게 늘 경의를 표한다. 정도전은 왕이 하루 두 시간씩 세 번 신하들과 공부를 하도록 했다. 의무적으로 각 관청의 관리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잠자기 직전에는 엄청난 양의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렇게만 공부를 하고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변하지 않을까? 정도전이 이상으로 삼았던 나라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으니, 아무래도 그는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던 사람인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왕조실록이라고 하니 대단히 놀라운 기록이 있을까 했으나 이미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 만큼 우리가 아는 조선의 역사는 조선왕조실록에 많은 부분 근거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교과서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왕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태종의 형이었던 정종은 태조와 태종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피비린내 나는 집안싸움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세종만큼이나 천재적인 왕이었던 문종, 그가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랬다면 조선의 전반적인 역사는 상당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12살 때 벌써 아비가 된 왕이 있다. 세조의 아들 예종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가 임신을 시켰고 5학년 나이에 아버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요절한다. 발에 고질적인 병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중종 다음 인종의 재위 기간은 불과 9개월, 조선 왕 중 재위 기간이 가장 짧은 왕이다. 아버지의 3년 상을 너무도 철저히 치르다가 제대로 먹지를 못하여 쓰러진 게 아니냐는 대목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나라의 임금이 먹지를 못해 단명했다는 것 아닌가!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었지 싶다.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선조가 지질한 왕인 건 잘 알고 있었으나 인조도 그 못지않았다. 자기보다 똑똑하고 인덕이 있는 아들을 시샘을 하는 등 어찌나 못났는지. 그런데 역사를 보면 그런 아비들이 꽤 많았다. 나보다 나은 자식을 자랑은 못할망정 짓밟으려 하는 부모라니, 참 이상도 하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도 정말 불행한 왕이었다. 주변이 온통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말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게 자신을 지키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재벌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기업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격이 되게 키운 후에 물려준다면 굳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격 없이 단지 재벌가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재력과 권력을 당연히 물려받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왕조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그 불합리함을 때려 부수려고 했던 정도전, 그의 꿈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왜? 그게 인간이 가진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탐욕에는 끝이 없다는 이상한 한계, 무한한 욕심이 만드는 한계를 인간은 가지고 있고, 그런 무한한 욕심의 한계를 가진 인간들이 훨씬 더 악착같이 살아남아가며 진화하고 있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인간이 가진 탐욕의 그늘을 확인해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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