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어린 예술가를 찾아서, '오래 준비해온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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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어린 예술가를 찾아서, '오래 준비해온 대답'
  • 전이음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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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 표지 이미지 / 사진 = 복복서가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 표지 이미지 / 사진 = 복복서가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전이음 칼럼니스트] 소설가는 어느 날 여행 다큐멘터리 PD의 연락을 받는다. 새로운 여행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라며 어디로 가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시칠리아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인 것처럼. 시칠리아에 다녀온 지 5개월 뒤, 소설가는 아내와 함께 서울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2년에 걸친 외국 생활의 길에 오른다. 첫 번째 목적지는 또다시 시칠리아다. 
 
2009년에 나온 책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가 새로운 이름과 함께 독자들을 다시 찾았다. 여행을 떠나게 된 정황부터 시칠리아를 떠나는 날까지, 소설가인 저자의 시칠리아 여행기가 펼쳐진다. 여행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은 가끔 책장 넘기는 손을 멈추게 한다. 
 
여행은 떠나는 행위다. 떠나게 되는 동기는 역설적으로 잠깐 멈출 때 발생한다. 책임과 의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그 속에서 나는 기계적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자각할 때다. 기업가처럼 더 ‘효율적인’ 일상 운영을 고민하거나, 같은 곳을 오가는 일상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때이기도 하다. 내가 축적한 물건들이 삶을 한 곳에 고정하는 것 같고, 가지고 있는 쓸데없는 것들이 삶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저자에게 일어난 일이다. 이제, 여행을 떠날 이유는 충분하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긴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정주민으로서의 삶을 정리해야 한다. 저자는 국립예술대학의 교수직을 내려놓고, 진행하던 라디오 문화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 집과 책,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팔거나 처분한다. 자신이 가르치던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내면의 ‘어린 예술가’를 구하라고 말했던 학기가 지나고, 정작 학교를 먼저 떠난 것은 저자 자신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어린 예술가를 구한 것인지, 또는 학생들 내면의 어린 예술가를 구한 건인지 자문한다. 어쨌든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는 예언적 성격의 여행에서 어린 예술가를 다시 찾았을까. 적어도 독자는 그가 보았던 시칠리아를 같이 여행한다. 속 터지는 열차 시스템, 어디선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고 사라지는 시칠리아 사람들, 고대의 흔적과 가슴 먹먹해지는 자연의 풍광. 시칠리아에 다시 오게 될 거라고 말했던 저자는 자신의 예언을 또다시 실현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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