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전이음 칼럼니스트] 1943년 가을,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식당에서 열 명의 여자들이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다. 끊어질 듯한 긴장감 속에서 두려움과 허기가 서로를 자극한다.
책의 첫 장면은 강렬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베를린에서 700km 떨어진 ‘늑대소굴’, 즉 히틀러의 동부전선 지휘본부다. 열 명의 여자들은 혹시 모를 히틀러의 독살을 막기 위해 고용된 시식가였다.
주인공 로자는 전쟁을 피해 남편의 고향으로 왔지만, 독일군에 참전한 남편 대신 시부모만 집에 남아있다. 로자를 비롯해 열 명의 여자들 중 자원해 시식가로 일하게 된 사람은 없다.그들 사이에도 무리가 형성된다. 하지만 말을 섞더라도 여자들 사이에는 쉽게 유대감이 싹트지 않는다. 도시에서 온 로자는 도둑질을 하는 등 지역 출신 여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 않다.

더군다나 히틀러의 뜻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여자들과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섞이지 못한다. 그러나 절대 넘을 수 없는 것 같은 선이 허물어지는 순간이 있다. 처음으로 같이 웃은 순간이 그렇고, 주인공 로자가 화상을 입자 히틀러를 찬양하는 동료가 상처에 감자 조각을 올려주는 순간이 그렇다. 상대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힘을 발할 때다. 후에 로자는 기차 속에서 우연히 한 가족을 만난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 비천함이야말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하고 진실한 이유처럼 느껴졌다’라고 고백한다.
시식가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양면성을 한 몸에 지닌 존재였다. 매번 독살을 걱정해야 했지만, 전시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먹을 수 없는 호화로운 음식을 맛보며 나치를 위해 일했다. 다른 등장인물들 또한 인간의 다면성을 보여준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동시에 도축이 잔인하다는 이유로 채식을 실천했던 히틀러도 그렇다.
그들의 식탁은 당시 독일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인류가 매일 직면하는 보편적인 위협을 상징한다. 로자의 어머니의 말처럼 먹는 것은 ‘죽음에 대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독이라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생존을 위한 모든 행위, 삶의 매 순간에는 위험이 숨어 있다. 위험을 피해 언제까지나 달아날 수는 없다. 다만 나와 같이 위험한 세상에 놓인 ‘길동무들의 육체’에 연민을 느끼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