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죽은 자의 집 청소' - 살인 병기 :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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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죽은 자의 집 청소' - 살인 병기 : 외로움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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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죽은 자의 집 청소’ 표지 이미지 / 사진 = 김영사
책 ‘죽은 자의 집 청소’ 표지 이미지 / 사진 = 김영사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죽은 자의 집 청소’,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프롤로그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읽다 말고 본문으로 들어갔다. 다 읽고 프롤로그로 다시 돌아왔다. 충분히 쉬웠고 공감이 되는 내용이었다. 
 
이 세상에 참 많은 직업이 있는데 하필 이런 직업을 택했을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너무도 힘들 것 같아 저자가 안쓰러웠다. 불행을 수습하는 일을 통해 본인이 불행에 젖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되기 쉽기 때문이다. 
 
현재 세상은 악몽을 꾸고 있다. 지금까지도 너무 긴 악몽이었는데 앞으로도 1년 이상을 그 악몽 속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힘든 사람들이 지구를 덮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시점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가난은 외로움을 벗 삼고, 그 외로움은 살인의 최적화된 도구가 된다. 자기를 살해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연명이 아닌 삶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무척 무겁고 아픈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지만 소중한 메시지다.

 자살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많다. 예전엔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맥락을 따라가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자살도 많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그런 두려운 죽음보다 더 끔찍한 현재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좀 더 편하고 쉬운 길이 보이면 거기로 가고 싶어진다. 그게 생존본능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존 자체가 극한 고문인 사람에게 마지막 남은 선택이 죽음이라 생각될 때, 그런 그 사람에게 고통스럽지 않은 생존을 제공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선택하는 죽음에 함부로 말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지 않을까.
 그런데 죽음의 자취를 지우는 저자를 따라가 보니 자살한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너무도 흉물스러웠다. 어쩌면 그 사람의 겪었던 지옥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다음의 글을 읽으며 상황을 그려보면 조금 납득이 될 것이다.

책 ‘죽은 자의 집 청소’ 표지 이미지 / 사진 = 김영사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당신은 없지만 육체가 남긴 조각들이 천연덕스레 기다립니다. 침대 위엔 몸의 크기를 과장해서 알려주는 검붉은 얼룩이 말라붙어 있습니다. 베개엔 살아 있을 때 당신의 뒤통수를 이루었을 피부가 반백의 머리카락과 함께 말라붙어 있습니다. 천장과 벽엔 비대해진 파리들이 달라붙은 채 소리 없이 손바닥을 비비고 있겠죠. 이불을 들추면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따뜻한 안식처를 찾아낸 구더기 떼가 뒤엉켜 서로 몸을 들비빕니다.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질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자기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이 마지막 선택하는 출구가 자살이 될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란 물질적 가난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책에 나오는 어떤 여자는 자살시도를 하려는 중에 저자와 통화를 하는 바람에 실패한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유추해볼 때 그녀를 가난하게 한 것은 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원룸에서 자살하기 전 분리수거까지 완벽하게 해 놓은 한 여인은 평소 인사성도 바르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 원룸을 청소하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평소 ‘고맙습니다’를 달고 살았으며, 명절이면 작은 선물을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청소부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인간관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는 무엇에 그리도 가난하였으며, 자신의 가난을 얼마나 혐오했으면 자신에게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었을까.
 
한 부부의 자살 현장에서는 그들의 허영과 사치가 드러났다. 더 이상 허영과 사치를 누릴 수 없어서, 그런 가난이 죽음보다 견디기 힘들어 그들은 함께 침대에 누워 나란히 갔다. 또 다른 의미의 동정심이 생긴다. 
 

책 ‘죽은 자의 집 청소’ 표지 이미지 / 사진 = 김영사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자신이 죽은 뒤처리까지 미리 걱정을 하여 전화를 한 남자. 죽은 사람 집 하나를 완전히 정리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물었다. 이 남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모두가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자살을 하려면 적어도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누군가에게 맡기고 떠나는 게 조금은 덜 이기적이고 상식이 있는 사람의 선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고독사는 이제 시작이다. 일본은 이미 일반화된 사망이다. 그들은 감정이 섞인 ‘고독’이란 말보다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고립’이란 단어를 선택했다. 그래서 우리가 고독사라 부르는 것을 그들은 고립사라고 한다. 고독사가 죽은 이의 편에서 나온 단어라면 고립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를 바라보는 이의 부담과 마음의 무게를 덜어보자는 단어라고 하겠다. 어떤 게 더 나은 표현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 쏟아져 나올지도 모를 가난하고 외로운 이의 주검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검이 남긴 흔적이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 너무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건 꼭 피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생계를 위해 그런 일을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기왕이면 그런 어둡고 아픈 것에 손을 대며 일하는 사람이 필요 없는 세상이면 더 좋겠다.
 
코로나19의 재확산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누굴 원망할 것도 아니다. 현재 인간의 한계로는 완벽한 방어가 힘든 전쟁 속에 우리는 있다. 좀 더 나은 방어 수단을 빠르게 만들어내길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그러는 동안 정말로 힘들게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가난과 외로움에 무너지는 일을 최대한 막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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