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어느 생존자의 이야기, '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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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어느 생존자의 이야기, '유원'
  • 전이음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0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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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유원’ 표지 이미지 / 사진 = 창비
책 ‘유원’ 표지 이미지 / 사진 = 창비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전이음 칼럼니스트] 매일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제삼자의 시선으로는 경중을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나, 당사자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파도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애도하며, 살아남은 사람을 ‘생존자’라고 부른다.
 
사건 당시의 기록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박제하지만, 생존자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계속 흘러간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다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삶의 분기점 이전으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더군다나 주변의 무심한 시선은 당사자를 과거의 사건과 더욱 묶어버린다.
 
소설 <유원>은 살아남은 사람이 느끼는 죄의식과 부채감, 원망과 혐오 등 복잡한 감정을 세심하고 사려 깊게 그려낸다. 유원은 아파트 세 층을 전소한 은정동 화재사건에서 살아남은 18살 청소년이다. 사고 당시 유원의 나이는 6살이었고,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는 어린 유원을 물에 적신 이불에 싸서 아래로 던진다. 유원은 살아남아 세상에 ‘11층 이불아기’로 알려지고, 언니는 세상을 떠난다. 가족들에게는 사고 며칠 전 언니의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던 것이 유일한 위안으로 남았다. 
 

책 ‘유원’ 표지 이미지 / 사진 = 창비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소설은 생일과 며칠 차이 나지 않는 언니의 기일 풍경으로 시작한다. 거의 10년 전에 언니를 알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언니를 기억하며 유원의 집을 찾아온다. 교회 사람들과 단짝 친구의 입으로 듣는 언니는 살았어야 했을 사람이다. 유원은 자신이 언니 대신 살아남았다는 데서 죄책감을 느끼고, ‘그냥 열심히 살기도 힘든데’ 두 배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린다. 

유원이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은 한 명 더 있다. 11층에서 떨어진 자신을 받아내느라 뼈가 으스러진 아저씨다. 의인으로 불렸던 아저씨는 언니의 기일마다 유원의 집을 찾아 유원의 부모님에게 곤란한 부탁을 하곤 한다. 유원은 그때마다 연민과 혐오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감당한다. 
 
과거를 극복하고 자신으로 일어서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방법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소설은 유원과 수현 남매의 만남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이 서로 기대어 일어나고,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제시한다. 아픈 마음의 증상과 통증을 세세하게 증언하면서도, 말을 아끼고 공감해주는 ‘함께 걷는 사람’의 윤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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