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책 ‘나와 당신의 베토벤’을 통해 살펴본 '영웅'의 의미
상태바
[오피니언] 책 ‘나와 당신의 베토벤’을 통해 살펴본 '영웅'의 의미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29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 ‘나와 당신의 베토벤’ 표지 이미지 / 사진 = 오픈하우스
책 ‘나와 당신의 베토벤’ 표지 이미지 / 사진 = 오픈하우스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 칼럼니스트] 베토벤 현악사중주들은 듣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책을 통해,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베토벤의 이 작품들을 소화할 만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엿볼 수 있고, 칼럼리스트 노승림 씨가 너무도 인간적인-늘 모순된 이중성 속에서 갈등하는 존재-베토벤을 잘 드러내 주어 베토벤이 여전히 우리의 영웅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갈등만 하다 사라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그는 그 갈등을 음악으로 표현했으며, 승화시켰으니 영웅이라 불러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1년 전쯤 ‘마지막 4중주’란 영화를 본 이후부터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제대로 들어야지 하면서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순례의 길을 진짜 가야 할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에베레스트 등정이 얼마나 힘든 여정일지 가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힘들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 길을 떠난다.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다 들어내는 과정이 그에 못지않게 힘들 것을 알면서도 그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오랜 결심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나의 영웅이 이 책을 내 눈에 띄게 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비올라라는 악기, 바이올린이나 첼로보다 그늘에 가려져 있는, 인기가 별로 없는 비올라라는 악기를 가지고, 매번 2천 석이 넘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매울 수 있는 비올리스트다. 비올리스트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현재까지 그가 유일하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그는 13세 때 참여했던 올림픽 뮤직 페스티벌에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중 첫 곡인 작품번호 18의 1번을 만났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을 엿새 동안 연주했다는 필라델피아 현악사중주단의 포스터를 그 페스티벌에서 보고 불가능한 꿈을 싹 틔운다. 또한 페스티벌의 주최자인 필라델피아 현악사중주단의 비올리스트 엘런 이글리친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리고 엘런은 25년 후인 2016년 3월, 리처드 용재 오닐에게 자신이 쓰던 비올라, 이탈리아 장인 가스파로 다 샬로가 1500년 후반에 제작한,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명기를 물려준다. 리처드 용재 오닐을 25년 간 지켜본 후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은 것이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그 악기로 그해 6월, 한국에서 에네스 현악사중주의 비올리스트로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을 연주한다. 그 25년 간, 어떻게 베토벤의 현악사중주와 만나왔고 성장했는지를 리처드 용재 오닐은 아주 캐주얼하게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에 심취할 수밖에 없는 성정을 가진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는 베토벤의 자화상이다. 위대하면서도 위선적이었고, 대범했으나 동시에 소심했으며, 혁명을 추구하면서도 안정을 바라는 모순된 삶, 그런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음악으로 승화된 것이 그의 16개의 현악사중주이다.

초기 현악사중주는 작품번호 18의 여섯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그의 후원자였던 카를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공작은 베토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의 집에서 열리는 음악 살롱에 드나드는 아마추어 음악인들은 베토벤에게 많은 음악적 자극을 주었다. 베토벤은 연주자들과 청중과 함께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해 가며 여섯 개 작품을 완성했다.

중기 현악사중주는 작품번호 59의 세 작품과 작품번호 74, 작품번호 95이다. 이들은 베토벤의 ‘영웅시대’라 불리는 시기의 작품들이다.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썼을 만큼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스러웠던 베토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영웅적 행보를 시작한다. 이 시기에 그는 위풍당당하고 블록버스터급의 작품들을 쏟아낸다. 귓병으로 소리가 멀어질수록 작품에 쏟아 붓는 그의 열정은 더욱 커졌다. 마치 자신의 운명과 마주한 사람처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의 현악사중주는 작품성은 뛰어났으나 연주하기도 듣기도 힘들어졌다. 그렇다보니 대중성은 떨어졌으나 음악 애호가들의 지적 허영심은 채워주게 되어 지금으로 말하면, 덕후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후기 현악사중주는 작품번호 127, 130, 131, 132, 135 그리고 133 <대푸가>이다. 그가 마지막 교향곡인 <합창>을 완성한 후, 죽기 전 2년 간 오로지 매달린 장르가 바로 현악사중주다. 그런데 극도로 난해하다. 특히, <대푸가>인 작품번호 133은 얼마나 난해한지 현대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조차 ‘영원토록 현대음악으로 남을, 가장 완벽한 현대음악’이라고 평했다. 어떻게 작곡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실내악 중에서도 가장 인기 없기로 소문난 현악사중주이면서 가장 어렵기로 소문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그것을 중심으로 베토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피아니스트로 음악 인생을 출발했던 베토벤에게 서른두 개 피아노 소나타는 고향이며 휴식처다. 가장 대중적인 아홉 개의 교향곡은 그가 세상에 피력한 이상적인 세계관에 대한 외침이다. 반면 현악사중주는 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끊임없는 갈등으로 가득한 내면세계의 기록이다.

혁명을 꿈꾸었으나 실상은 궁정악장이 되고 싶었다. 자신을 억압했던 아버지를 미워했으나 자신 역시 조카 카를에게 똑같이 했다. 귀족을 경멸하면서 그들과 동등하게 인정받기 바랐다. 이런 모순과 투쟁을 그는 아주 솔직하게 음악으로 풀어내었다. 그것이 그의 위대함이다. 그의 장례식에 당시 빈 인구 5만 중 1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하니, 그의 괴팍함 이면의 위대함을 사람들이 알아보았던 것일까?

그의 현악사중주는 듣기 어렵다. 그의 인생이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그가 살았던 나이만큼 살고 나니 그가 왜 영웅인지 이해가 된다. 보통은 삶에 갇혀서 쩔쩔매거나 기만과 회피 속에 살다 가는데 그는 뚫고 나가 지독한 운명을 바라다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며, 그래서 내 인생에 대해 군소리를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며, 힘을 내볼 용기를 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체계 개선 위한 ‘더 듣는 공청회’ 개최
  • [전문가 서평] '읽는 대로 일이 된다' - 독서와 삶을 연결하는 고리
  • [오피니언] 쓸쓸하지만 처연하지 않은, 책 ‘올리브 키터리지’와 함께
  • 문피아, ‘금강 웹소설 부산 Q&A 특강’ 성료
  • [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전문가 서평] ‘수소전기차 시대가 온다’ - 지속가능한 미래의 대안, 수소전기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