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어떤 부부의 세계, ‘조용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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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어떤 부부의 세계, ‘조용한 아내’
  • 전이음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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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조용한 아내’ 표지 이미지 / 사진 = 엘릭시르
책 ‘조용한 아내’ 표지 이미지 / 사진 = 엘릭시르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전이음 칼럼니스트] 상대방을 잘 알고 있다는 게 실망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가 과거와 동일한 실수를 할 때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이 실망스럽다. 어떤 유혹에 취약한지, 언제 나약해지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혹시 덫에 다시 걸린 게 아닐까 하면서도 의외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도 있고, 그런 일말의 기대감마저 말라버린 관계도 있다. 후자는 보통 반복적으로 기대가 배반되는 경우 귀납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다.

믿음과 변화의 가능성 사이의 끝없는 줄다리기. 그것을 결혼생활이라 부른다. 상대의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이 나와 맞지 않을 때, 그의 사소한 습관이 나를 미치게 할 때, 그럴 때도 당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결혼 선배들은 대대로 말해왔다. 이미 평생을 약속한 사람인 만큼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때로는 모르는 척 눈감아 주기도 하고, 아는 것을 다 말할 필요도 없다.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바닥을 파헤치면 흙탕물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서평전문지 모먼트 DB

소설 <조용한 아내>에서 아내 조디는 결혼 생활에 대한 오랜 격언들을 이미 체화한 것처럼 보인다. 조디는 남편 토드가 상습적으로 외도를 일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남편의 바람을 문제 삼아 길길이 날뛰거나 이혼을 요구하지 않는다. 토드의 물건을 숨기거나 버리며 가끔 사소한 복수를 할 뿐이다. 조디는 세상 물정 모르는 희생적이고 불쌍한 아내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하고, 상담심리가로 일하며 내담자들의 성장을 돕는다. 20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며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도 내밀하게 파악했다.

조디는 남편의 신의를 믿는 대신 자신의 삶이 계속 이어질 것을 믿는다. 그 속에는 두 사람의 관계도 포함된다. 조디는 자신의 안온한 일상을 사랑하고, 매일에 충실하며 미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나쁜 일이 있더라도 삶은 결국 한 방향으로 이어질 것을 믿는다. 토드의 새로운 외도 상대를 알고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근본적인 믿음에 균열이 가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니 믿음이 무너지는 것은 불시의 일격이라기보다 과정에 가깝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잘 알고 있는 상대가 의외의 결정을 내린 순간이다. 토드가 이번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익숙한 세계는 사라지고 살인의 동기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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