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그림자 노동의 역습’ - 셀프시스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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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그림자 노동의 역습’ - 셀프시스템의 역설
  • 정훈 문헌연구가
  • 승인 2019.10.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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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표지 이미지 / 사진 = 민음사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 표지 이미지 / 사진 = 민음사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정훈 칼럼니스트] 최근 패스트푸드점에선 햄버거를 주문할 때 점원을 마주할 필요가 없다. 손님은 커다란 기계 앞에서 자신이 먹을 메뉴와 추가할 구성을 선택하고 매장 식사인지 포장인지를 고른 후 카드로 결제하고 기다리면 된다. 점원에게 직접 주문하는 경우는 별도의 할인쿠폰을 사용하는 경우나 기계 조작에 익숙치 않은 노년의 손님이 주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판매기기가 등장한 이후 보는 풍경이다. 키오스크는 대형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뿐만 아니라 중소규모의 프랜차이즈 음식점 및 카페 등에서도 도입되고 있고 소규모 개인 음식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간단한 은행업무를 볼땐 은행원과 마주앉을 필요가 없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흔한 풍경이다. 예전엔 간단한 입출금, 계좌이체, 통장정리 등의 업무를 볼때 번호표를 뽑고 은행원 앞에 앉아야 했지만 은행ATM의 등장 이후로는 정규 은행업무가 끝나 문을 닫은 후에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모 은행의 경우엔 단순한 ATM이 아니라 업무시간 이후에 별도로 운영하는 상담사와 연결하여 기존 ATM만으로 처리 할 수 없는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기계를 따로 도입하기도 하였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 곳곳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셀프주유소'를 볼 수 있다. 과거에 대부분을 차지했던 일반주유소에 들르면 마주하는 점원에게 얼마나 넣을건지 말하고 카드를 건네주면 점원은 해당 금액만큼 주유도, 결제도 진행해 주었다. 운전자는 스트레칭을 하거나 화장실을 갈게 아니라면 차에서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셀프주유소에서는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직접 주유구에 주유기를 넣고 결제를 해야 한다.

위 사례의 공통점은 고객인 소비자가 각 업계의 직원이 했던 일을 이제 직접 처리한다는 것에 있다. 셀프서비스는 이제 너무나 당연해져서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공급자가 소비자에게 제공했던 서비스들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면서 공급자들은 비용절감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공급자들의 업무를 대신 떠안으면서도 합당한 댓가를 따로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을 하고도 그 노동으로부터 이득을 받는 측으로부터 아무런 댓가를 받지 못하는 것, 이를 그림자노동 이라고 한다.

저자 크레이그 램버트는 '하버드 매거진'에서 20년 넘게 스태프 필진 겸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처음 출간한 책 '마인드 오버 워터'로 퓰리쳐상 후보에 오르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저널리스트이다. 이 책 '그림자 노동의 역습'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하여 큰 호응을 받았던 사설 '대가 없이 추가된 그림자 노동'을 확장한 것으로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사회 비평가인 이반 일리치가 1981년에 주창한 '그림자 노동'의 개념에 착안해 현대인들이 어떤 그림자노동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림자노동이 개인의 삶과 우리 사회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진단한다. 앞서 이반 일리치는 가사, 교육, 보육, 통근 등 임금에 기초한 상품 경제하에서 보수를 받지 않은채 진행되는 노동을 그림자노동이라 정의하였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책은 그림자노동의 정의와 예시부터 시작해서 각 가정에서, 직장에서, 시장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에서 그림자노동이 어떻게 늘어나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진단한다. 각 챕터별로 설명하는 그림자노동의 사례를 보자면 동네아이들이 공터에 모여 부모의 간섭 없이 뛰어놀았던 과거와 다르게 부모가 아이들의 스포츠활동을 직접 통제하고 지역 팀을 만들어 아이들을 훈련시킬 코치를 선정하고 타 지역 팀과 경기를 잡고 훈련이나 경기를 위해 수백킬로미터를 직접 운전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비록 경기시간의 대부분을 벤치에서 보낸다고 해도)은 가정에서 새로 발생한 그림자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아이들이 모여 알아서 뛰어놀던 것과 비교해본다면 얼마나 신경쓸 것이 많아졌을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직장에서는 인원감축으로 인해 사라진 동료가 맡았던 업무를 떠맡게 된 것을 그림자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늘어난 업무량에 비해 보수가 늘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고용되어 거의 무급에 가까운 보수를 받으며 여러 잡일을 하는 대학생 및 사회초년생의 노동 역시 그림자노동의 한 예시로 볼 수 있다.

시장에서는 앞서 예시를 들었던 주문하기 위한 커다란 기계들을 운영하는것을 그림자노동이라 할 수 있다. 대형 마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늘어난 무인결제 시스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컴퓨터와 인터넷 세상에서는 순간순간 업데이트를 요구하거나 버전이 바뀌면서 활용법과 디자인을 다시 배워야 하는 프로그램들을 그림자노동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보안을 이유로 점점 더 길어지고 복잡해질것을 요구하는 각 사이트의 비밀번호들 역시 일종의 그림자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두개의 계정이라면 수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적 업무나 개인 사정에 따라 수십 개씩 계정을 사용한다면 이를 관리하는 것 역시 그림자노동에 해당한다. 업체 스스로의 보안수준을 높이는 것 보단 개개인의 비밀번호가 복잡해지길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셀프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개개인이 지불하는 비용이 줄어들었으니 문제가 아니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확실히 법률자문을 받는 것과 관련 법을 검색해 지식을 얻는 것에서는 큰 비용의 차이가 나타난다.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 보다 온라인 대행사의 홈페이지에서 개인이 직접 비행기표와 숙박을 고르고 비용을 비교해 선택하는 것이 더 저렴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우리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경제적 이득을 얻었지만 그림자노동을 수행하느라 개인만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현대인들이 과거에 비해 어째서 여가시간과 수면시간이 줄어들었는지에서 출발한 이 여행은 저자가 미국인인 만큼 각종 예시가 미국에 한정되어 있어 다른 국가에 사는 우리가 실감하기 어렵다는 아쉬운 점만 제외하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엔 그림자 노동이 우리 삶을 얼마나 잠식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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