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열한 계단' - 삶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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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열한 계단' - 삶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
  • 정훈 문헌연구가
  • 승인 2019.10.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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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책 ‘열한 계단’ 표지 이미지 / 사진 =  웨일북
책 ‘열한 계단’ 표지 이미지 / 사진 = 웨일북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정훈 칼럼니스트] 세상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주는 책이 많다. 모 포털의 책 메뉴에서 '독서법'으로 검색하면 만권에 가까운 책이 검색된다. 절판되어 검색에 걸리지 않는 책들과 제목에 독서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독서법에 관한 책들까지 합친다면 만권이 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많이 검색되는 독서법에 관한 책들을 보니 독서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하다.

검색된 독서법 책들을 보면 눈에 띄게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제가 독서 방법론, 다시 말해 학교공부, 글쓰기, 속독, 직장인을 위한 짬내서 하는 독서 등 목적에 맞춘 독서스킬이다. 각 목적에 맞는 독서법을 소개하고 익히는 방법등을 안내하는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의 다른 주제는 어떤 책을 봐야 하는지, 어떤 책이 양서이고 어떤 책은 영양가 없는지 등을 추천하거나 독서가로서 자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기억을 더듬는 독서수필 등이 있다. 열한 계단은 후자에 가까운 책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독서를 위한 책을 고르는 기준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의 세계에 동감하여 그와 비슷한 세계의 책을 골라 지식과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것과 그 세계를 무너뜨릴 정 반대의 책을 골라 지식과 이해의 넓이를 넓히는 것이 그것이다. 저자는 두 방법 모두 우열을 겨룰 수 없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후자를 권한다. 인간의 생명은 짧고 인간이 이룩해놓은 지식은 그 광활함을 해아릴 방법이 없을 정도로 넓기 때문이다. 한 분야만 깊이 파고 내려가면 그 영역의 전문가가 되어 개인의 명예도 얻고 사회 발전에 이바지도 하겠지만 이 넓은 세상의 놀라운 지식을 모른채로 삶을 마감한다면 너무나 아쉬울 테니까.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저자 자신이 후자의 독서를 통해 성장해온 사람이다. 책은 그의 독서인생을 되돌아보는 덤덤한 수필처럼 진행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은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곤 했다. 공부엔 흥미가 없어 성적도 뒤에서부터 세는 것이 훨씬 빠를 정도였다. 부모는 생계에 바빠 소년을 신경써주지 못했다. 그렇게 고2 겨울방학까지 시간이 지났다. 무기력하게 텔레비전을 보던 방학의 어느 날, 왜인지는 모르지만 문예부 소속이었던 소년은 자신이 책 한권 읽어본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역시 왜인진 모르지만 방학동안 적어도 책 한권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돌아다니며 책장에서 책을 고른다. 태어나서 처음 읽는 책이니 무언가 대단하고 멋져보이는 책을 찾았는데 놀라운 두께와 놀라운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이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낯설고 장문을 읽는 것에도 익숙치 않아 집중을 잃고 금새 졸음이 몰려왔다. 소년은 읽다 졸리면 자고 일어나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겨울방학의 절반동안 죄와 벌을 읽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때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의 무기력한 일상은 산산조각 났다. 무한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칠흑같은 내 영혼의 골방엔 깊은 균열이 생겼다. 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저자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불편함이란 그동안 익숙했던 것과 다른 세계라는 의미이며 이는 개인이 성장할 기회와 다름이 아니다. 어떤 책이 불편한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각자의 성장과정과 쌓아온 지식, 주어진 상황, 경험 등 각 개인은 그 개인의 숫자 만큼 불편을 느끼는 책도 다르다. 어떤 책이 불편하다면 그 책이 담고 있는 지식들이 그동안 익숙했던 세계를 해체하여 새로운 세계로 이끌 신호인 것이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헤겔의 변증법을 차용한다. 고요하고 편안하며 익숙한 자신의 세계가 정(正), 자신의 세계에서 살며 조금씩 감지하는 모순과 의문, 외부에서 발견하는 반례 등이 쌓여 반(反)이 되고 정과 반의 치열한 투쟁을 양분삼아 굳은 뿌리를 내려 성장한, 정도 반도 아닌 합(合)이 그것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앞서 묘사한 소년은 저자의 어린시절이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의 끝에서 처음으로 독서라는 활동과 마주한다. 그동안 무기력하고 바깥 풍경 보기 좋아했던 삶이 소년의 정이었다. 어느날 우연히 접했던 '죄와 벌'은 소년의 고요한 원래 세계를 산산히 깨부숴버렸다. 다수의 선을 위해 소수를 희생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삶을 던진 로쟈와 자신을 희생해 다수의 선을 추구한 소냐의 삶, 그 둘이 만나 벌어지는 일, 결국 로쟈가 소냐에게 영향을 받아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모습 등 소년에겐 없었던 삶의 의지와 실천이라는 반이 등장한다. 정과 반이 격렬하게 투쟁하였고 합을 도출했다. 그것은 주변 어른들이 한 번도 소년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 문학만이 소년에게 제시한 균열, 바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답이었으며 이것을 추구하기 위해, 문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대학의 국문학과로 진학하는 의지와 실천이었다.

이 책은 작가의 변증법적 삶을 따라 진행된다. 문학, 기독교, 불교, 철학, 과학, 이상, 현실, 삶, 죽음, 나, 초월은 저자가 걸어 올라간 열한 개의 계단이며 각 단계에서 정을 구축한 뒤 튀어나오는 반과 투쟁하여 합을 도출했던 순서로 되어 있다. 합은 다시 정이 되고 또 다시 반을 만나 투쟁한다. 이 주제와 순서는 저자의 삶이기에 독자들과는 다르다. 어째서 저것이 합으로 도출되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연하다. 모든 독자는 각자의 다채로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단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주제를 만났으면 한다. 그 주제를 반으로 삼아 합을 이루기 위한 독서를 하기 바란다. 이렇게나 넓고 큰 세상에서 일생동안 자신에게 익숙한 것만 본다면 정말 아쉬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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