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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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 정훈 문헌연구가
  • 승인 2020.05.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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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표지 이미지 / 사진 = 북라이프
책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표지 이미지 / 사진 = 북라이프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정훈 칼럼니스트] 이 책의 무엇이 나의 눈길을 끈 것일까. 

아마 책 뒷편에 있는 추천사를 보고 끌렸던 것 같다. 바로 '일하는 모두가 지금 읽어야 할 책'이라는 추천사.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자신이 의사로서 환자들의 고민을 대할 때 시대에 따라 고민이 달라졌다고 한다. 온도가 높은 고민에서 온도가 낮은 고민으로. 즉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자기 자신에 침착하는 고민이 늘어난 것이다. 비단 이 사람의 환자들만은 아닐 것이다. 서점가에 그 모습이 늘어나는 퇴사에 관련된 책들, 퇴사를 잘 하는 법, 퇴사 이후의 삶 등을 다루는 책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 들어가서 많은 월급 받으며 일하면 행복할 거라고 교육받고 자라왔는데 막상 일해보니 쏟아지는 일거리에 자신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과도한 부담만이 자신을 짓누루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세대라면 이런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견뎌냈을 것이다. 일찍 결혼하여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는 환경에서는 섣불리 일을 관둘수 없었을 것이고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사정은 비슷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비슷하게 힘들면 힘든줄 모르고 살지 않는가. 더군다나 사회적 통념 자체도 일을 열심히 하는게,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었으니 더욱 그렇다. 소위 말하는 꼰대들의 자기자랑이 그 흔적일 것이다. 나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그 자랑들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힘든 생활을 견뎠을까. 온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더라도 이 고통을 감내하면 나에게 혹은 내 자식들에게  밝은 미래가 도래한다는 굳은 믿음이 힘든 생활을 견뎌내게 해준 모르핀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Unsplash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Unsplash

그렇다면 현대 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스러운 직장생활을 견딜 모르핀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의 일반화와 사회분위기의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만 그런 이유때문이라면 곤두박질 치는 결혼율과 출산율을 설명할 수 없다. 여러 기사에서 언급되었지만 이 나라에서 내 자식을 낳는 것은 자식에게 죄를 짓는 것이기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젊은이들의 의견은 미래가 없다고 느낀다는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떨어지는 출산율이 결국 결혼하는 부부가 적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해준다. 기혼자의 출산율은 2가 넘어가기 때문에 충분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는 이들은 충분한 소득과 아이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결혼할만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결혼하지 않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합계 출산율이 곤두박질 친 것이다.
 
전통의 목적이 사라져버렸으니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하는 목적이 붕 뜰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의 저자 이즈미야 간지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불안, 우울과 같은 병력의 환자들을 기존의 약물요법에 의지하지 않고 상담과 행동교정으로 치료하는 요법을 중점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수많은 환자와 상담하면서 쌓인 경험을 과거 선현들의 지혜와 이어붙여 해결책을 짚어나가는 것을 담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 나쓰메 소세키, 한나 아렌트, 폴 라파르그 등 일에대한 선현들의 지혜는 왜 일해야 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그 답을 찾는 방향을 안내해 줄 것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Unsplash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Unsplash

“그것 보게나. 먹고사는 게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수단이라면 먹고살기 쉽게 일하는 방법을 찾는 게 당연하잖은가.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을 하든, 어떻게 일하든 상관없이 그저 식량을 얻을 수만 있다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겠나? 노동의 내용도 방향도 그리고 순서도 전부 다른 사람에게 제약을 받는다면 그것은 타락한 노동이라네.” 
 
네쓰메 소세키의 작품 <그 후>의 등장인물인 다이스케의 대사이다. 그는 고등유민(高等遊民)이었는데 고등유민이란 당시 고등교육을 이수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인재들을 가리킨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라는 충고에 단지 먹고살기만을 위해 노동하는 것은 올바른 노동이 아니라는 취지로 대답하였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 활동의 전반을 노동, 일, 활동의 세가지로 구분하였다. 노동은 인간이 동물의 일종으로서 생명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에 쫓겨 행하는 작업이다. 노동을 통해 생겨난 산물은 소비되는 성질이 있으며 영속성을 갖지 않는다. 반면 일은 인간만이 갖는 영속성이 있는 무언가, 이를테면 도구나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가리키고 활동은 사회와 역사를 형성하는 정치적 작용이나 예술 등의 표현행위를 일컫는다.
 
또 아렌트는 그리스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세로 ‘관조생활vita contemplativa’이 있었다고 짚는다. 관조생활은 일종의 성찰, 또는 명상과 비슷한 뜻으로 자연이나 우주의 진리를 감지하여 차분하게 마주하는 자세를 뜻한다. 인간이라면 무릇 이런 관조생활을 해야 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수행하는 노예가 필요했다고 한다. 따라서 노동이란, 노예가 하는 하찮은 것으로 경멸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Unsplash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Unsplash

이런 노동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영락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나니 바로 산업혁명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기계화와 대량생산은 인간의 숙련된 기술과 전문화에 의해 행해지던 ‘일’을 하던 장인들을 노동자로 대체해버림으로써 일은 노동으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일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일에서 얻는 삶의 행복과 기쁨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허무함에 지배되어 버리고 말았고 인간다운 관조생활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톱니바퀴 같은 노동으로 소비재를 생산해내고 다시 홀린듯 이 생산물을 소비하는 인간답지 않은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후>의 다이스케는 인간을 잃어버리는 노동의 속성을 간파하고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고등유민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하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우리는 학교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 마땅히 해야 하는 것 등으로 교육을 받았고 주변 어른들 역시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흉보는 등의 모습을 보아왔다. 과거엔 분명 천대받던 노동이 어째서 인간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일까. 아렌트에 따르면 노동의 가치가 상승한 것은 존 로크가 ‘노동은 모든 재산의 원천’이라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애덤 스미스의 ‘노동이 모든 부의 원천’이라는 주장을 거쳐 칼 마르크스의 ‘노동체계’에서 정점에 이른다. 이들이 일과 노동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저 소비되는 노동과 영속성을 남기는 일이 구별되지 않고 동일한 것처럼 합쳐져 버린 것이다. 
 
반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윤을 추구하는 정신인 자본주의 정신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금욕적 정신을 추구해야 할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관에서 생겨났다는 신선한 주장을 편 인물인데 그는 노동의 가치가 올라간 이유로 종교개혁 당시 마틴 루터가 성서를 번역하면서 등장시킨 천직이라는 개념때분이라고 주장했다. 마틴 루터는 수도원 내에서의 금욕적인 생활보다 ‘세속 내의 금욕’으로서의 천직을 수행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 주장하였고 이를 이은 청교도주의에서 더욱 발전한다. 주요한 청교도 목사 중 하나인 리처드 백스터의 저서에 따르면 ‘노동은 그 이상의 것이며 무엇보다도 신이 규정한 생활의 자기목적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사도 바울의 명제는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노동 의욕이 없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를 드러내는 징후다.’고 노동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말은 이렇게 기독교적 윤리관에서 등장한 것이다.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우리가 노동을 신성시 했던 것에는 자본주의가 경제체제로 자리잡으면서 그 기저에 깔린 청교도적 윤리 역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고대 그리스인들과 다르게 관조하는 삶의 권리를 빼앗긴 채 노예처럼 노동에 매몰되어 있다. 물론 현대에서 그리스처럼 노예를 부리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노예를 대체할 고도의 기계화와 정보화가 실현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에 얽매여 있으며 오히려 IT기기의 노예가 된 것처럼 노동에 종사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왜 살아가는지,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살아가는 의미는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혹은 ‘없다’로 대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대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인생 자체에 미리 의미가 있거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기 때문이다. 의미는 있다, 없다로 딱 잘라 말할수 있게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의미를 ‘추구한다’는 ‘지향성’을 가질 때 비로소 생겨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이를 ‘의미에의 의지’라고 표현하며 프로이트의 ‘쾌락에의 의지’와 아들러의 ‘권력에의 의지’로는 인간의 의미를 설명하기 부족하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이 쾌락과 권력을 쫓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것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이다. 프랭클의 개념은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에서 기반한 것으로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다른말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로 표현된다. 즉, 세상과 세상의 진리, 생명체의 본질 등을 인식하는 주체가 되려는 의지를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결국 살아가는 일 자체에 ‘인생’이라 이름 붙이고 거기에 의미를 묻는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것, 이런 일련의 행위를 통해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삶이란 무엇인가, 살아가는 데에 의미가 있는가 등을 고민하게 된 이유로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람에게 자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톱니바퀴처럼 수행하면 되었다. 그러나 자유가 주어진 순간부터 개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해 나가야만 되었다. 자유가 없을 때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부담이 되어 우리를 옥죄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모순적인 인간의 속성을 고찰해낸 학자로 그에 따르면 이 자유의 무게에 무릎꿇지 않으려면 ‘자발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발성, 자발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개인을 예술가라 칭했다. 혹은 어린아이와 같다고도 설명했다. 어린아이들은 자발성의 다른 예로서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동안에, 또는 그들의 얼굴로 표현되는 감정 속에서 자발성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아이가 곧 예술가라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만 어지러운 사회에 대한 저항력이 부족하고 외부에 영향에서 자신의 세계를 지킬수 있는 강인함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비리로 물든 세속에 단호하게 맞서고 거기서 잊힌 자연의 본성, 즉 미(美)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단지 예술가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자유를 속박하는 다양한 장애물과 맞서 싸우고 창조적 유희를 즐기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예술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얻기 위해 일상을 벗어던지고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어떤 특별한 행위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만약 삶의 의미라는 것이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인생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범한 ‘일상’은 살아가는 의미를 얻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살벌한 의미로 바뀌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일상이야말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설명한다. 일상에서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것, 즉 놀이가 그것이다. 
 
어렸을 때는 어떤 것으로도 곧 잘 놀았는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놀이와는 멀어져 버렸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질을 양으로 전환하여 생각하는 경제원리를 꼽는다. 어떤것이 효율적인가를 판단하는 이런 목적지향의 사고는 단지 비즈니스의 세계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사고 자체에 깊숙히 스며들어 있어 어떤 판단을 할 때에도 효율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어떤 도움이 될까?', '손해일까 이득일까?', '가성비는?', '기대하는 결과가 보장되는가?’ 등과 같이 효율을 따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놀이라는 것은 애초에 ‘효율’적인 것이 아니다. 결과야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목적보다는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을 따지는 현대인의 머릿속에서는 ‘놀이’가 파고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놀이와 멀어지게 되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Unsplash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Unsplash

그렇기에 저자는 자연스럽게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에서 놀이를 추구하기 위해 ‘즉흥’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즉흥을 마음에 두고 생활한다면 별 것 아닌 일이 전율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정이 없는 주말에 어디를 갈지 계획을 세우지 말고 일단 나가보는 것이다. 자주 가는 큰길까지 왔다면 즉흥적으로 평소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던지, 지나가기만 했을 뿐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가게에 들어가본다던지 하는 것이 그 예이다. 마트에 가서 한바퀴 돌아본 다음 눈에 띄는 식재료를 선택해 어떤 음식을 만들지 즉흥적으로 생각해 본다던지, 서점에 들러 한바퀴 돌아본 다음 그저 눈길을 끄는 책을 집어 한번 읽어본다던지 등의 다른 예도 존재할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이 즉흥적으로 마주하는 재미를  ‘우연히 깨닫는 기쁨’으로 표현하는데 일상에서 소소한 부분을 일부러 즉흥적으로 행동한다면 소소하지만 설레는 발견과 창의적인 연구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즉흥성과는 다른 방법으로 일부러 ‘번거로움’을 활용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현대 사회는 효율을 추구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 참 많다. 간단하게 맛을 내는 MSG도 그 중 하나이며 컴퓨터는 효율의 최첨단이나 다름이 없다. 저자는 일부러 번거로움을 위해 MSG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맛을 내본다던지, 컴퓨터 자판을 두두리지 않고 오랜만에 펜을 들어 글을 쓴다던지 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오랜만에 마주한 ‘번거로움’은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상담하던 환자들의 고민이 과거와는 다르게 인생의 의미, 살아가는 이유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그 원인을 과거 선현들의 지혜와 엮어 나름의 방법으로 분석하여 설명한다. 저자의 견해에 동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에서 창의적인 무언가를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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