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하마터면 안 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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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하마터면 안 읽을 뻔했다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1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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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표지 이미지 /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표지 이미지 /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에세이를 뒤적일 때면, 이 책 제목이 자꾸 눈에 띄었다. 제목만으로 예측이 가능했다. 벌써 공감 백배였다. 그런데 선뜻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혹시 예측이 틀리면 어쩌지, 글이 허접하여 이렇게 좋은 제목이 아까우면 어쩌지, 그래서 기분이 상하면 어쩌지 하는 이상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저자는 재능이 있는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직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관성이 남아 있는 지금, 그렇다고 열심히 살아도 별 수 없는 괴이한 자본주의 세계가 되어버린 지금, 그의 결단과 실천은 매우 의미심장하며 바람직한 도전이다. 많은 이들이, 젊건 나이가 들었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지금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찾을 용기가 있고 그 과정을 인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바란다.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은 인생이 참 쉽지 않다. 이들은 어떤 기질의 사람보다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고 그러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상황 때문에 억지로 시류에 따라가 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결국 못 견딘다. 거기다가 내향적이기까지 하다면, 이건 답이 없다. 
 
내향적인 사람은 에너지가 자기 내부로 향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에 쓸 에너지가 적다. 꼭 필요한 관계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이어가야 하는 관계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상대가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니다. 밖으로 쓸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내향적인 사람은 재수 없어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보이기 싫어서 억지로 인간관계를 견뎌야 하니 이중삼중으로 이들은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쉽게 번 아웃 되어 버린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에 꼭 ‘왜’를 단다.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 ‘왜 열정을 가져야 하느냐’고 걸고넘어진다. 그리고 열정은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좋으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고 깨달아버린다. 또 모든 일에 매 번 열정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는 것도 알아차리고 만다. 이런 사람에게 무엇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다수가 그러니 너도 그래야 한다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수의 생각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내게는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다수의 논리에 따른 이데올로기대로 살지 않는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삶의 수단 중 하나인 돈이 삶의 목적이 된 것을 당연히 여기는 세태를 따라가는 것이다. 공부가 무엇인지는 알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공부해야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며, 스스로를, 자식을,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포기해야 할 때조차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에 쇠뇌가 되어 포기를 못하고, 그래서 새로운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인간은 종교가 없으면 살기 힘든 존재다. 태어나서는 부모가 종교다. 조금 자려면 친구나 선생님이 종교가 된다. 학벌이 종교가 되고 마침내 돈이 종교가 된다. 그러니 인간은 다신교인이다. 한 사람이 믿는 신이 최소 2,3개에서 수십 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일신을 믿는다는 개신교나, 이슬람교, 유대교는 다 헛소리다. 가장 미개한 종교이며, 가장 갑갑한 종교가 이들 유일신 종교다. 차라리 이 신 저 신 다 괜찮다는 게 훨씬 유연하다. 
 
이렇게 인간은 뭔가를 믿어야 마음이 놓이는 존재다. 그걸 매 순간 부정하고 떨쳐버리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엄청난 싸움이다. 그걸 시도한다는 것은 위험천만의 모험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말은 바로 종교적 인간을 부정하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자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얼마나 큰 용기를 내어 종교적 인간의 굴레를 벗으려고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가 죽는 날까지 그 굴레를 계속 벗어내기를 바란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베짱이처럼 사는 것이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그는 가진 재주로 노래를 부르고 즐겁게 살 뿐이다. 그를 미워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내가 베짱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미들의 시기와 질투다. 이솝은 개미였고 그를 부리는 주인은 베짱이였다.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노예인 자신은 뼈 빠지게 일하며 굽실대어야 겨우 먹고 사는데, 태어나길 귀족으로 부자로 태어난 주인은 놀고먹으며 사니 말이다. 
 
최근 충남의 어느 마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마을은 애고 어른이고 노는 데 정신이 팔린 마을이다. 그런데 마을이 아주 잘 된다. 다른 데서 벤치마킹을 하려고 찾아온다. 잘 노는 사람들은 잘 산다는 것을 이들은 증명하며 살고 있다. 왜 베짱이가 나쁜가? 잘 노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데, 잘 노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적어 여유가 있고, 남을 포용할 수 있고, 남을 돕기를 즐기게 되는데 왜 베짱이가 나쁜가?

저자가 베짱이가 되려고 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다시 개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베짱이의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깨닫기 바란다. 그런데 그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베짱이로 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가능성이 덕지덕지 묻은 불순물 때문에 안 보일 뿐이다. 따라서 베짱이로 살려면 버려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아야 한다. 또 그걸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실천이 따라야 한다. 그러면 누구나 자기 속에 잠재된 베짱이가 될 수 있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시스템으로 마을이 돌아간다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돈의 굴레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다. 공유 경제 시스템을 통해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다.’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을 보았다. 얼마나 아름다운 꿈인가! 이런 꿈들이 자금자금하게 여기저기에 자꾸 생겨서 세상이, 사람들이 보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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