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나’ - 불, 요리 그리고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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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나’ - 불, 요리 그리고 폭력
  • 정훈 문헌연구가
  • 승인 2020.05.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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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나 ’ 표지 이미지 / 사진 = 반니
책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나 ’ 표지 이미지 / 사진 = 반니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정훈 칼럼니스트]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상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역사>라는 책에서 ‘스칼라 나투라이(scala naturae)’,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연의 사다리’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만물은 각자의 중요성에 따라 자연의 사다리에서 각자 알맞은 위치가 있다는 주장이었으며 이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종은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의 밑으로는 포유류, 조류, 어류, 곤충, 연체동물이 자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자연의 사다리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가장 중요하며 위대한 종이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위대한 존재의 사슬(Great Chain of Being)’이라는 유럽대륙을 지배했던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위대한 존재의 사슬이 절정을 이뤘던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인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각자의 특별한 계급과 위치가 존재한다 여겼다. 만일 만물이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 여겨 두려워 하였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알렉선더 포프는 자신의 시 <인간론>에서 ‘위대한 존재의 사슬’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신은 인간을 창조하였지만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에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여 자신이 가야할 길을 밝히고 걸어가야 하며,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였다. 
 
그 뒤를 이어 인류 역사의 거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인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생물이 필요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같은 조상에서 각자의 사정에 맞게 진화해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찰스 다윈만의 독보적인 주장은 아니었고 당시에 이미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존재했었던, 통용되던 생각이었다. 인간은 더 이상 홀로 고귀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과학저널 <네이처>에서 10년간 편집자로 활동했던 유전학 박사 애덤 러더퍼드의 책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특별히 다르다고 여기는 특성이 다른 동물들에게도 발견된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은  특별할게 없는 동물이라는 증거를 제시함과 동시에 다른 동물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지점을 알려주어 그럼에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전개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부분을 말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이 바로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현대 인류는 도구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날때 부터, 이미 침대, 이불, 베개, 시계, 스마트폰 등, 수 개에서 수십 개에 달하는 도구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모든 문화를 완전히 도구에 의존하는 동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구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도구란 ‘동물이 자신의 힘을 연장해서 물리적 작용을 가하는 데 사용하는, 동물의 몸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동물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은 전체 종의 1퍼센트 미만이다. 하지만 그 수는 적더라도 생물의 분류군을 가로지르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성게, 곤충, 거미, 게, 달팽이, 문어, 어류, 조류, 포유류 등 9개의 동물 강에서 도구 사용이 보고된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짧은꼬리원숭이들은 게나 쌍각류 조개를 먹을 때 돌로 딱딱한 껍데기를 깨고 열어서 먹는다. 우리에게 친숙한 해달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먹이를 먹는다. 저명한 생물학자 제인 구달이 보고한 것처럼 침팬지가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 흰개미집 입구에 쑤셔넣어 흰개미를 빼먹는 것 역시 도구를 사용하는 일례이다.
 
호주에 서식하는 큰돌고래의 일부는 바닷속에 서식하는 해면(sponge)을 주둥이에 두르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돌고래가 거친 바위투성이 해저에 숨어 있는 성게, 게 등의 먹이를 찾을 때 주둥이를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듯 하다. 특이한 점은 해면을 사용하는 돌고래의 대다수는 암컷이라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해당 돌고래들이 해면을 사용하게 하는 DNA적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종의 학습을 통해 전파된 것이 아닌가 하고 예측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도구와 더불어 인간만의 특별한 요소로 불을 사용하는 것이 있다. 불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호주의 과학자들은 솔개, 휘파람솔개, 갈색매가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물어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불을 붙이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불 붙은 나뭇가지가 새로운 초원에 떨어져 불이 붙으면 해당 새들은 주변의 나무에 앉아 작은 동물들이 불을 피해 도망쳐 나오는 것을 기다린다. 그리고 도망쳐 나온 작은 동물들은 새들의 먹이가 된다. 이 새들은 쉽게 사냥하기 위해 불을 옮기는 것이다. 
 
인간의 특성이라 생각했던 행동을 다른 동물들도 수행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럼 인간은 어떤 부분에서 다른 동물들과 다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 유전자가 몇가지 발견되었다. 2018년 6월에는 NOTCH2NL이라는 유전자가 발견되었는데 이 유전자는 침팬지에는 없는 유전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NOTCH2NL의 이전 버전인 유전자가 모든 유인원의 공통 조상에서 불완전하게 복제되었는데 약 300만년 전 인류의 몸에서는 바로잡혀 활동하는 반면 침팬지의 몸에서는 지금까지 훼손된 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전자는 방사신경교 세포라는 뇌세포의 성장을 강화하는 기능을 가졌는데 방사신경세포는 대뇌겉질 전체에 분포하고 있으며 더 많은 뉴런을 만들어 뇌의 성장을 촉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우리는 SRGAP2라는 유전자 복사본을 4개 가지고 있다. 반면 다른 유인원들은 하나씩만 갖고 있다. 다른 복사본은 특별한 기능이 없어 보이나 이 중 두 번째 복사본은 대뇌겉질 뉴런 가지돌기의 밀도와 길이를 증가시키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유형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으로 해당 요소가 없는 생쥐에 해당 유전자를 삽입하면 생쥐의 뇌에서도 두텁고 밀도 높은 가지돌기가 자라나는 것이 확인되었다. 
 
해당 SRGAP2 유전자는 약 240만년 전에 등장하였으며 이때는 우리 선조의 뇌 크기가 현저히 증가했던 시기이다. 돌을 깨고 다듬어 여러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나>는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나 제목이 내용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우리 인간, 호모사피엔스는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는지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지금의’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우리 인간은 최초 조상으로부터 수십만년을 이어져 내려왔지만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을 그 광대한 세월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특정 시점에서부터 이전과 다른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그 변화가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촉발시켰다. 그렇기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다. 하지만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미묘한 차이점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이 책은 사람과 동물 그리고 진화에 대한 특별한 시각으로 당신을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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