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당신 곁의 그 사람, ‘근린 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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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음의 책 톺아보기] 당신 곁의 그 사람, ‘근린 생활자’
  • 전이음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2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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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근린 생활자’ 표지 이미지 / 사진 = 한겨레출판사
책 ‘근린 생활자’ 표지 이미지 / 사진 = 한겨레출판사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전이음 칼럼니스트] 소설집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근린 생활자’는 무슨 뜻일까. 우선 근린생활시설은 미용실, 슈퍼마켓 등 주민의 생활에 편의를 주는 시설물을 뜻한다. 이런 편의시설을 들이겠다고 상가로 준공 허가를 받은 다음, 주택으로 용도를 불법 변경한 것을 소위 ‘근생’이라고 부른다.

수리 기사인 상욱은 공인중개사의 권유에 따라 ‘근생’을 장만한다. 공인중개사는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 주차나 층간 소음 등의 문제로 신고만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공무원이 불시에 들이닥칠 수 있으니 잘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라는 말도 덧붙인다.

지금 사는 집을 팔고 언젠가는 아파트 같은 곳에서 살겠다는 꿈을 안은 채 ‘근린 생활자’가 된 상욱. 작가는 책의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의 삶이 비정규직의 모습과도 같다고 말한다. 외부의 위협에 취약하며, 언젠가 올 미래를 위해 불안한 현재를 견뎌야 한다.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그러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는 책임론에 마주하게 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이 소설집에는 <근린 생활자>와 더불어 불확실한 현재에 용케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다른 5개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다. <소원은 통일>에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다가 대북 사업에 투자하며 태도가 달라진 한 노인의 이야기가, <그것>에는 삶을 위협하는 음모에 맞서는 한 사내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삿갓조개>에는 위험천만한 작업 환경에서 시급 900원 인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노동자가 화자로 등장하며, <사마리아 여인들>은 소매치기와 매춘으로 삶을 영위하는 두 할머니의 우정을 다룬다. 마지막 작품인 <청소기의 혁명>의 주인공은 발명품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왕년의 엔지니어다.

작가는 책 속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집을 여덟 글자로 요약한다. ‘극한 직업의 달인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빚고 구워냈다. 다양한 연령, 직업의 주인공들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현실은 고되고 야박하며 생존 이상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각 작품은 최소한의 안전과 편안을 쟁취하기도 쉽지 않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가감 없이 보여주며, 동시에 조금 더 나은 내일이 가능할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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