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로마법 수업’ - 과거를 통한 우리 시대의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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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로마법 수업’ - 과거를 통한 우리 시대의 해법은?
  • 정훈 문헌연구가
  • 승인 2020.03.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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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로마법 수업’ 표지 이미지 / 사진 = 문학동네
책 ‘로마법 수업’ 표지 이미지 / 사진 = 문학동네

 

1. 수도권에 인구가 몰려듬에 따라 주거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건물주와 건설사들은 무분별하게 주택을 짓고 있으며 최대 이윤을 보기 위해 벽돌의 저항력이나 건축 자재의 질 등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세입자들은 건물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 무분별한 주택건설로 인해 기존 거주자들의 조망권에 대한 갈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건설사와 협상이 되지 않는 경우 기존 입주민들은 '신축공사 금지통고' 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3. 정부와 국회에서는 한 목소리로 시민들의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목소리를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모 장관은 시민단체와의 모임에서 "그래도 우리는 시민 정신에 따라 결혼해야만 합니다"라고 발언 했습니다. 정부에서는 독신자와 무자녀 부부의 상속권을 제한하고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법령을 입법예고하여 논란이 예상됩니다.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정훈 칼럼니스트] 위 문단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오늘날 티비 뉴스나 신문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는 내용들이다. 아파트 부실시공은 2020년 1월 29일 자 국토교통부에서 32건을 발견해 행정조치를 시행했다고 발표한 내용에 대한 뉴스가 바로 검색된다. 조망권 역시 재건축과 재개발이 증가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다루어지는 분쟁이다. 결혼 및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 시행 역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이들은 제도적으로 그만큼 손해를 보도록 정책을 집행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재 시행중인 정책이 출산 및 육아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에 실제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차치한다.

그렇다면 저 문단의 내용들은 최근 뉴스에서 따온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내용들은 대략 2000년 전 로마시대의 시대상을 현대에 맞게 각색하여 묘사한 것이다. 바로 어제 뉴스에서 접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익숙한 문제들이 로마시대의 것이라니!

2017년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서점가를 강타한 베스트셀러인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가 신간 '로마법 수업'으로 다시 찾아왔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이자 서강대 라틴어 강의를 진행해 온 한동일 교수는 '로마법 수업'에서 한국인에게 생소한 로마법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혼과 비혼, 돈과 계급, 여성문제, 낙태와 성매매, 간통 등 현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키워드를 뽑아 로마인들의 지혜를 우리와 나누고자 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앞선 문단의 첫 번째 사례는 실제 로마의 주택가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로마의 주택양식은 도시 안의 단독주택인 도무스(domus)와 다층 공동주택인 인술라(insula)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술라가 현재의 아파트와 비슷한 주거형식이었다. 도무스는 부자들만 살 수 있었고 인술라는 주로 임대용이었는데 로마는 당시 인구 집중현상으로 인해 토지 임대료도 매우 높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로마시민들은 인술라에서 거주했던 것이다. 더불어 높은 수요를 등에 업고 건물주와 건축업자들이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저렴한 원자재를 사용하고 고도제한을 지키지 않은 채 최대한 높이 건설하다 보니 입주민들은 붕괴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야 했다.

두 번째 사례는 첫 번째 사례와 같이 한다. 무분별한 인술라의 건설로 조망권에 문제가 생겼기에 '신축공사 금지통고' 제도를 활용하였다. 신축공사 금지통고란 '자기의 재산을 침해하는 이웃의 신축공사에 대해 부동산 소유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말하며 공공장소나 도로의 사용을 방해할 경우에도 제기할 수 있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세 번째 사례에서 장관의 발언이라고 표현한 발언은 기원전 100년 경 로마의 한 감찰관이 어느 시민모임에서 한 발언은 각색한 것이다. 로마법에서 결혼의 목적은 '적출자녀의 생산'이었는데 이미 당시의 많은 로마인이 '혼인의 의무를 다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는 하나의 증거'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당시 로마의 황제들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여러가지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특히 '혼인계층에 관한 율리우스법'과 '파피우스 포파이우스법'을 보면 25세 이상 60세 이하의 모든 남성과 20세 이상 50세 이하의 모든 여성은 의무적으로 결혼할 것을 규정하였고 이 의무를 지키지 않은 독신자나, 무자녀 부부에겐 상속권을 제한하거나 추가 세금을 부과하기까지 하였다.

어떠한가, 정말 어제라도 뉴스에서 접해본 것 같은 사례가 아닌가! 200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현대의 법률과 똑 닮아 보이는 로마법은 현대 법의 근간이 로마법에 그 뿌리를 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로마법은 숱한 압력 속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싶어했고, 끝내 인간답게 사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나의 아집과 편견을 넘어 너와의 소통과 상생을 꿈꾸었던 로마인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렸던 돌탑과도 같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추상적이고 막연한 인간의 소망과 기대를 구체적이고 또렷한 문장으로 현실화시키려 노력한 로마인들의 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것은 조직과 사회생활의 압력 속에서 함부로 짓이겨지고 뭉뚱그려지고 구석으로 밀렸던 우리들의 자아와 인간적 소망을 복원하는 긴 여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자가 어째서 2000년도 더 과거의 법인 로마법은 우리에게 소개하는지 서문에 잘 들어난다. 현대사회의 법률과 생활이 2000년 전 로마 사람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어떤 문제로 이런 법을 제정하였으며, 그 결과 어떻게 해결을 하였는지를 되짚어보며 현대의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아내는 나침반으로 삼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흥미로우면서도 슬프다. 수천년의 시간이 지나도 인간의 본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과, 옳은 방향으로의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그래도 로마인들이 앞서 그래왔듯, 우리도 돌탑에 돌 하나를 얹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완성은 볼 수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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