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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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
  • 정훈 문헌연구가
  • 승인 2020.02.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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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표지 이미지 / 사진 = 오우아
책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표지 이미지 / 사진 = 오우아

[서평전문지_모먼트 = 정훈 칼럼니스트] 이 책은 일본의 불합리한 노동환경에 대해 유머스럽게 다룬 일종의 블랙코미디라고 볼 수 있다. 댓가 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 독감에 걸려 체온이 펄펄 끓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연차, 그 외에 회사의 여러가지 불합리한 지시를 따르고 있는 회사원들과 이런 환경이 어디서부터 조성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살아남을 생존지침을 제시한다. 

일본에서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을 큰 가치로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람보다 실제 급여나 근무조건을 묻는 구직자는 ‘기본’이 안되있는 사람이라 하여 거부한다고 한다. 이런 문화는 초등교육에서 부터 직업을 가질 때 보람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교육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학교에서, 언론에서 보람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구직을 할 때 역시 자신이 잘 하는 일 중에 무엇을 해야 보람을 느낄지가 직업을 고르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그에 따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가 기업을 상대로 당사에 취직하면 어떤 보람을 느낄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그에 호응하여 기업에서도 자사의 직장인들이 나와 자신이 어떤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는지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이 일종의 세일즈포인트로 자리잡았다. 물론 여기서 자신이 얼마나 야근을 하는지, 연차사용은 보장되고 있는지 등의 실질적인 요소는 제외되어 있다.
 
이에 더하여 일본에서는 대학을 막 졸업한 학생들을 위주로 신입사원을 뽑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이 타이밍을 놓치면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특이한 채용문화가 있다. 이제 막 졸업한 학생들을 신졸(新卒)이라고 표현하는데 신졸의 신분에서 취업이 안되면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졸인 상대 경쟁자를 제치고 취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신졸인 구직자들은 수십군데의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넣게되고 처음으로 수십번의 거절을 겪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경험을 통해 ‘나를 뽑아주는 회사라면 어떤 회사던지 충성하겠다’라는 마음이 내면화되어 자연스럽게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절하기 더 어려워진다고 설명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하게 되면 첩첩산중이다. 바로 신입사원 연수가 그것이다. 신입사원 연수의 목적은 회사의 명령에 토를 달지 못하도록 복종하는 분위기를 내면화하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학습이 아닌 등산, 해병대캠프, 조별 장기자랑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연수를 통과하고 나면 동료 직원들간의 동조 압박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노동자의 권리가 훼손된 직장환경에 앞서 적응한 동료들은 ‘튀는’ 신입사원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동조압박을 통해 무언가 부당하다 느끼던 신입사원은 사라지고 한 명의 훌륭한 부품만 남게되는 것이다. 
 
이렇게 회사의 입장에서만 써먹기 좋은 직장인,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수행하는 직장인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직장인들을 사축(社畜)이라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회사와 가축을 합친 말로 주인에게 복종하는 가축처럼 회사에 복종하는 직장인을 가르킨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회사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회사원이라고 새로 정의하는데 다르게 표현하면 회사일에 치여 나 자신이 없어진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직원을 향한 사축화 요구는 사축이 되어도 정년을 보장 받고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고도발전 시기의 유산라고 지적한다. 당시의 고용형태였던 종신고용과 연공임금을 통해 회사로부터 평생을 보장받는 대신 사축이 되는 것도 받아들이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버블경제 이후 종신고용과 연공임금의 시스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원이 사축처럼 일해야 한다는 요구 역시 없어져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회사에 헌신해야 한다는 가치관은 남아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저자는 사축이라는 개념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미 사축이 되어있을지 모르는 직장인 혹은 이제 사축이 될지도 모르는 직장인들을 향해 사축을 벗어날 여덟 가지 가이드를 제시한다. ‘회사가 던져주는 보람이라는 먹이를 무작정 받아먹지 말 것’. ‘괴로우면 언제든 도망칠 것’, ‘경영자 마인드로 일하지 말 것’, ‘직장 내 인간관계는 선택할 수 없으니 잘 안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할 것’, ‘회사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내 노동력과 급여를 교환하는 ‘거래처’라고 생각할 것’, ‘이직을 두려워 하지 않도록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것’,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 부채는 최대한 지지 말 것,’ ‘남들과 똑같이가 아닌 나 자신을 살필 것’. 너무나 당연한 말들에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저자가 의도한 바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소리’인데 직장이라는 사회에서는 이 당연한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어린애의 투정’정도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한 사람이라도 ‘회사의 독자적인 가치관, 이른바 ‘사축’적 가치관에서 탈출해 ‘당연한’ 것들을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책을 읽다가 몇번이고 우리나라 작가가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직장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국내판에서는 우리나라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삽화가 삽입되어 현실감을 더욱 진하게 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보람’을 우리나라의 ‘열정’으로 치환한다면 상당부분 들어맞게 되는 것 역시 우리와 너무나 판박으로 보인다. 야근이 일상인 노동환경을 보며 24시간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아 구로의 등대로 불리던 모 회사와 최근 광고에서 야근을 당연한 듯이 표현한 모 게임회사가 생각났다.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외에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뿐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말들을 재치있는 일러스트로 표현하여 직장인들의 속마음을 달래주는 책, 그대가 오늘도 야근에 시달리고 돌아온 직장인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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