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코코 샤넬' - 자기를 위해 디자인한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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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코코 샤넬' - 자기를 위해 디자인한 샤넬
  • 편린(片鱗)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2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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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코코 샤넬’ 표지 이미지 / 사진 = 작가정신
책 ‘코코 샤넬’ 표지 이미지 / 사진 = 작가정신

[서평전문지_모먼트 = 편린 칼럼니스트] 뷰티 관련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지라 샤넬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그냥 이름만 알았을 뿐이다. 그러다 우연히 <샤넬과 스크리아빈>이란 영화를 보았다. 물론 내 관심은 스크리아빈에게 있었다. 그 영화에서는 두 남녀 사이에 묘한 불륜의 기운이 흐른다. 그런가보다 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봄의 제전’의 제작 과정이 훨씬 흥미로웠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또 우연한 기회에 샤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일이 생겼다. 그때 비로소 그녀가 모자에서 시작한 디자이너라는 것, 그녀가 불편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킬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는 것,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크게 한몫 했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또 지금은 샤넬 하면 부유층의 브랜드라는 이미지인데 사실 그녀가 추구했던 것은 결코 상류층만을 위한 패션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디자인을 누군가 차용하여 쓰는 것에 대해 아주 관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차에 <코코 샤넬>이 눈에 띄었다. 좀 더 그녀에 대해 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녀를 중심에 두고 당시 유럽 사회의 트랜드나 문화, 예술 등의 상황과 흐름을 상당히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 샤넬을 알아보려고 들어왔다가 그 이상의 수확을 얻은 것 같다. 
 
패션 디자이너로서뿐 아니라 자기주장이 명확했고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시대를 앞서가야 했던 여성으로서의 샤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인물관계가 꽤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적당히 읽으려고 하면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가브리엘 샤넬은 어머니를 일찍 여인 후 두 자매와 함께 아버지에 의해 수녀원에 맡겨진다. 샤넬은 나중에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지만 어려서는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생각에 크게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 광분을 할 독자도 있겠지만 말이다. 자신이 결코 세 딸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아주 빠르게 판단했던 것 같고, 그래서 수녀원이라면 적어도 밥을 굶기지 않을 것이고, 교육도 어느 정도 제공하는 곳이니 맡긴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녀가 수녀원에서 자란 덕분에 바느질을 익힐 수 있었다는 것, 수녀원을 둘러싼 흑백의 조화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는 것은 디자이너로 성장할 작은 씨앗이 된 셈이다.
 

샤넬의 주변에는 꽤 많은 남자가 있었다. 첫 남자라 할 수 있는 에티엔 발장은 가난의 곤고함으로부터 그녀를 벗어나게 해 주었으며,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침내 편안하고 무료한 삶이 그녀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했다. 그러다가 운명의 남자, 아서 카펠을 만난다. 그는 가브리엘의 재능과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녀가 시작하려는 가게를 차리도록 자본을 대며, 은행으로부터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우며, 그녀가 보다 교양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많은 예술인들과 접촉할 기회를 준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스크리아빈이다. 물론, 샤넬이 스크리아빈을 남자로서 좋아했던 게 아니다. 뛰어난 음악가인 스크리아빈을 후원했을 뿐이다. 그녀에게 빠진 건 스크리아빈이다.
 
책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든 이가 카펠이다. 샤넬은 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아서 카펠 한 사람이었다. 샤넬이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엔티엔이 거느린 많은 정부 중 한 명으로 살다가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을지도 모른다. 그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기에 샤넬이 오늘의 샤넬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분상승의 야망이 매우 컸던 관계로 그가 샤넬과의 결혼을 선택하지는 않지만 이 역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녀도 이해를 했다. 오히려 그와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샤넬은 만인의 샤넬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샤넬은 비록 물질적으로 남자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겠다’는 신조로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의 가도를 달리면서 함께 불어난 자신의 자산으로 카펠에게 빌렸던 그 많은 돈을 모두 갚는다. 물론, 그는 그걸 돌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거기다 샤넬은 매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면 디자인 하지 않았다. 즉 디자인의 중심에 항상 가브리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오히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않는 그녀가 마음에 든다.

1910년 모자 가게를 시작으로 성공의 문으로 들어간 샤넬은 1912년부터 단순하고 편리한 여성 옷을 만들기 시작하며 이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전쟁이 여성 노동력을 요구했고 그녀가 만든 샤넬 라인 원피스, 큰 호주머니가 있는 짧은 소매 재킷, 길고 따뜻한 머플러는 주효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사진 = 픽사베이

그녀는 향수에도 손을 댄다. 1921년 그 유명한 샤넬 넘버5가 출시된다. 보석은 부의 상징이 아니라 패션의 엑세서리여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1924년에는 코스튬 주얼리도 출시한다. 물론 대중의 반응은 엄청났다. 1926년에는 상복에만 쓰였던 검은 색상을 여성의 일상복에 적용하여 ‘리틀 블랙 드레스’를 출시한다. 샤넬 하면 또한 다이아몬드 패턴의 퀼팅이 떠오른다. 그 인기는 1955년 그녀가 출시한 퀼팅 숄더백, 일명 2.55백에서 비롯되었다. 
 
그녀의 디자인은 갈수록 유럽보다는 미국이 더욱 열광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957년,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패션 오스카상’을 수상한다. 그녀의 자기중심적이고 그래서 남의 눈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움이 미국 사회가 추구하는 기조와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녀의 사업적 성공 뒤에는 깊은 고독이 있었다. 어쩌면 그 외로움이 성공의 기폭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공허함을 메우려는 끊임없는 시도와 도전이 샤넬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것을 의식했든 못했든 그녀는 그렇게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녀가 죽은 지금도 브랜드 샤넬은 최고의 브랜드로 여성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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